평소에 든 생각

헐뜯기부터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RayShines 2025. 11.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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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무조건 헐뜯기부터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성공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컨텐츠들이 아주 많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하고 있는 투자나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신이 왜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들도 많이 봅니다. 워낙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피상적인 것들만 보고 무조건 헐뜯기부터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OOO 탈출은 지능순이라든지, 지금 OO 하는 것은 미친 거라든지, 지금 OO을 사는 것은 바보라든지 하는 그런 말들을 서슴지 않고들 합니다. 그런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견은 그냥 혼자 갖고만 있어도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죠.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나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에 위배되는 것을 보면 위협감을 느낍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봐도 혐오감, 더 나아가 공포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배척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합니다.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위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감염원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파괴하러 온 적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에 대해 기꺼운 마음으로 무조건 환영하는 것보다 일단 의심을 해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합니다. 믿음에 대해서도 이런 논리가 당연히 통합니다. 과거 인류사를 보면 인간들이 이교도를 어떻게 대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외양이 다른 것보다 믿음이 다른 것에 대해서 인간은 훨씬 더 과격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합니다. 그 두 가지가 다 다르다면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은 인터넷에서도 거리낌 없이 발휘됩니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라면 외양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얼굴을 숨기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텍스트 기반의 플랫폼이라면 외양이 어떤지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더 어렵지요.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우리말을 쓰고 있다면 일단 민족적 외양은 동일하다고 가정하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믿음이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평가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지에 대해서 평가합니다. 얼마나 비슷한 지보다 다른 것에 먼저 집중합니다. 그것이 훨씬 더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것을 많이 찾아낸 뒤 나와 비슷하다고 판단 내리는 것보다, 다른 것 하나를 찾은 뒤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훨씬 더 자원 소모가 적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준 몇 가지를 정한 뒤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나와 다른 것으로 판단하고 그때부터는 이 피아식별의 게임에서 상대방은 적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내놓은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은 평가 기준에서 저 아래로 내려가고, 그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일이 생깁니다.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고, 이걸 이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어”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와  연대기적 맥락이 있습니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서사로 풀어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무작위적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 부분이 상당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랜덤 이벤트에까지 이야기를 부여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이 그저 우연과 운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내 인생은 그저 무작위이며, 무의미하다”는 컨셉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우리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왜 집을 사는지 혹은 사지 않는지, 우리가 왜 미국장 혹은 국장에 투자하는지 등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논리적이고 데이터 기반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감정적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로 남들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매우 단편적인 정보로 판단한 뒤 호불호를 정하고 무조건 선호, 혹은 거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뒷이야기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이 이해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도 이래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에서 하는 상호작용은 그저 말 한마디, 문장 한 조각이 거의 다입니다. 그러면서 험담, 욕설을 하고 그 사람의 인생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과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이에 대한 혐오 때문일 수도 있고, 그로 인한 불안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과 믿음, 그리고 거기 근거한 나의 판단과 결정이 틀릴 수도 있다는 증거가 될지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나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나의 생각이 매우 확고해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 쪽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할 시간에 내 생각이 옳은지를 검증해 보는 시간입니다.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설득 불가능한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고, 내 생각이 틀렸다면 내 생각을 수정하면 그뿐이니까요. 인생은 짧지만, 틀린 것을 고쳐나갈 시간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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