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우리는 이제 손글씨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RayShines 2025. 11.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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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거의 손글씨를 쓰지 않습니다. 타이핑을 하거나 탭핑을 하거나 스와이핑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도 이번에 책을 읽다가 알게 됐는데 미국에는 자동서명기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처럼 서명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관료들이 미리 자동서명기에 서명을 저장해 두면 그것을 똑같이 해주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자주 쓰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동서명기가 사용된다는 생각을 모르게 하려고 잠금장치가 있는 벽장에 따로 보관하기도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전사 군인의 유가족에게 보낸 서한에 자동서명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공분을 산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오마바 역시 6개 이상의 법안에 자동서명기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해서 공격을 받기도 했고요. 가수 밥 딜런은 600달러에 판매되는 한정판 서적 “현대 음악의 철학”에 자동서명기를 사용해서 팬들이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자동서명기가 한 서명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낄까요? 그 서명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기계가 대신 한 것이니 형태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건 진짜가 아니며, 진짜 서명이란 본인이 펜을 들고 종이에 한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이 글은 제가 쓴 글일까요? 하루키도 맥북으로 소설을 쓴다고 하던데, 하루키가 친필로 쓴 소설이 아니니 그것은 진품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야 할까요? 서명은 형태의 문제이고, 글은 내용의 문제이니 둘을 같이 볼 수는 없겠으나 이제 우리는 거의 글씨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서명을 할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편 극단적 각도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제 글씨를 전혀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글씨가 타이핑에 대해 어떤 강점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타이핑을 하는 학생과 손글씨를 쓰는 학생의 학습 능력을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손글씨를 쓰는 학생들이 높습니다. 타이핑을 하는 학생들은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교수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게 됩니다. 반면 손으로 쓰는 학생들은 말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만 요약해서 적게 되는데 이 와중에 더 집중하고 더 정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들의 경우에도 연구 결과는 비슷합니다.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읽기, 쓰기 활동을 시킨 뒤 성적의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가장 좋은 성과를 낸 그룹은 손글씨를 쓰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그룹이었습니다. 손글씨 그룹은 단어 인식, 읽기 능력이 향상되었고, 공부한 내용을 보다 더 잘 기억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도 더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이것을 매우 재미있어했다고 합니다. 손글씨가 단순히 손과 팔을 움직이는 노동이 아니라 글자를 기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필과 종이라는 물체의 물리적 속성이 주는 만족감이 있고, 둘 사이에 마찰이 일으키는 특유의 느낌과 소리가 주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글씨를 거의 쓰지 않는 우리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요새는 서명도 전자서명을 해서 보냅니다. 맥북이나 아이패드에는 그런 옵션이 들어있기도 하고요. 서명조차도 이제는 한 번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종이 위에 연필로 쓰는 일은 훨씬 더 적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을 더 가두고 더 좁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이긴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것조차도 귀찮을 때가 있어서 스마트폰의 받아 적기를 사용할 때도 많습니다. 갈수록 우리는 몸은 덜 움직이고, 생각은 적게 하고 있습니다. 글씨를 쓸 수 있는 사람의 숫자보다 글씨를 쓸 수 없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아진 세상이 어떻게 될지, 그런 세상이 과연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알 수 없겠으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요새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속 어디엔가는 글씨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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