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현대 사회는 모든 고통과 불편함을 너무나 적극적으로 제거한 나머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고통을 찾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삶에 있어서 고통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성장에 대해서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한 개인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는 고통과 시련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을 통한 도전 없이 인간은 쾌락만을 좇을 뿐이고, 이것은 개인이 현상을 유지할 뿐, 혹은 퇴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도전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알게 되고, 시련이 닥쳐야 과거와 현재의 답습에서 탈피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게 되며 한 단계 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봤을 때, 태어나서 편하게 살다가 죽었다는 단선적 서사에 감동받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작위적 혼란에 노출되면서도 목적을 갖고 목표를 찾아 걸어가는 모습에 감동받으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에게 고통은 필수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편 의견도 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어서, 혹은 우리 아이의 미래를 볼 수 있어서 어떤 고통과 시련을 겪을지 모두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든 그 고통을 피하게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피할 여지조차 없이 닥쳐온 불행은 맞설 수 있지만, 만약 그 불행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면 피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고통은 싫어하고 안락함을 좋아하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왜 굳이 고통이 필요하냐, 당신네들은 고통이 뻔히 오는 걸 아는데 그걸 온몸으로 맞이할 거냐, 편한 게 최고 아니냐는 것에 대해서 반박할 게 거의 없습니다. 꼭 성장해야 하느냐는 궁극적 질문, 그리고 난 내 인생의 드라마가 한 줄로 끝나도 전혀 거리낌 없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매우 편안해졌습니다.
질병, 감염, 사고 등이 여전히 일어나긴 하지만 인간의 여명은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위험하다고는 하나 예전만큼 위험하진 않을 것입니다. 반면 음식과 잘 곳을 구하기 위해 생고생을 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밖으로 걸어 나갈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만 몇 번 누르면 집 앞까지 모든 것이 다 배달됩니다. 고생이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굳이 고통을 느껴야 하는가, 피할 수 있다면 모든 고통을 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세상은 이렇게 편안해졌는데 왜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자해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비율 역시 증가하고 있을까요. 왜 이렇게 편안한 시대인데 사람들은 고통스럽다고 호소하고, 자기 몸에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고통을 끌어들이고 있을까요. 역설적으로 세상이 너무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고통을 느끼면 이를 진화하기 위해 기분을 편안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을 작동시킵니다. 이른바 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 뭐 그런 것들이지요. 이런 것들을 인위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은 알코올, 마약 등의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고, 건전하게는 운동을 하는 방법이 있고, 파괴적으로는 자해 행동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결과는 비슷합니다. 결국은 뇌에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물질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편안한 현대의 삶은 마치 넓고 높은 하얀색 벽에 우두커니 남겨져 그 벽에 낙서라도 하지 않으면 그 막막한 무한함을 견딜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이 없자 우리는 고통을 찾아 나서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이것입니다. 과거의 고통들은 그저 삶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일들이었고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고통들은 자기 파괴적인 동시에 너무나도 간편한 것들이어서 우리를 강하게 하기는커녕 그것들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세상이 안전한 곳이 되어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무조건 편안해지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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