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발생률에 따른 개념 변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문제가 적으면 오히려 문제가 더 많다고 인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문제 발생 빈도가 적어진다고 해서 더 만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데이빗 레버리라는 심리학자는 공항을 지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교통안전국 요원들이 누가 봐도 선량해 보이는 시민들을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다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후회하느니 안전한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안전은 취득하기 매우 비싼 가치입니다. 안전을 위해서는 모두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공항 검색대도 그렇고, 도로의 속도 제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안전을 추구하는 집단에서 뭔가 한 가지 빈틈이 발생하면 그 빈틈이 10만 번 중 단 한 번 발생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그 빈틈을 틀어막기 위한 규제가 생겨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10개가 생기면 규제는 10개, 100개가 있었다면 100개가 됩니다. 이제는 비교적 안전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규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규제를 느슨하게 했다가 다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규제를 철폐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비행기에 타려는 모든 사람들이 반입 금지 물품을 전혀 가져오지 않는다면 안전국 요원들은 완전히 긴장을 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요? 레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적발하거나 색출해 내야 할 물품이 전혀 없다면 요원들은 “이럴 리가 없는데”라고 여기며 자신들의 검색 결과를 신뢰할 수 없어 더 넓은 범위를 뒤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목표는 위험물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위험을 찾아낼 때까지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어떤 문제의 발생 빈도가 매우 드물어지고 아예 0에 수렴함에도 불구하고 뇌는 굳이 굳이 굳이 문제를 찾아내는 경향을 갖습니다.
이것을 증명한 한 연구는 실험 참가자에게 800개의 표정을 하나씩 보여주었습니다. 참가자는 800개의 얼굴 중 위협적으로 보이는 얼굴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는 200번째 정도에 이르렀을 때 참가자 모르게 조금씩 덜 위협적인 얼굴을 섞어 넣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참가자들은 덜 중립적인 얼굴을 위협적인 얼굴이라고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과제 자체가 “위협적이냐, 그렇지 않냐”의 양자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그 중간 어디 즈음을 보게 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반드시 택하라고 하면 우리는 위험을 줄이는 쪽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강한 경향을 가집니다. 이런 현상을 문제 발생률에 따른 개념 변화 prevalence-induced concept change 라고 부릅니다. 문제를 찾아야만 한다는 의무에 잠식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이런 일이 흔히 벌어집니다.
분명히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매우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세상은 안전하고 청결하며 안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뭔가 흠결을 찾아냅니다.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는 다 좋은데 이래서 문제야, 이 동네는 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이 사람은 다 괜찮은데 이게 문제야, 이 세상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낙관, 혹은 비관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문제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반드시 불편한 것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지요. 아마 그래서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것일 테고요.
어제까지는 편안했던 소파가 오늘은 조금 마음에 안 들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마음에 들었던 랩탑이 오늘은 단점 투성이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늘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 더 안락한 것을 찾습니다. 더 이상 좋아지거나, 편해지거나, 안락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그 광고 카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의 불편함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현대인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다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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