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개념이긴 하지만 어른 없는 사회(sibling society)라는 개념이 있더군요. 부모의 물리적, 정서적 부재로 인해 아이들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또래들에게서 롤모델을 찾는 현상을 말한다고 합니다.
로버트 블라이라는 학자가 이 말을 한 것이 1996년도라고 하니 벌써 30년 전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저 용어가 지금의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금의 세태를 무조건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동, 청소년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요즘 어른들에게는 어려 보이고, 어리게 생각하고, 어리게 행동하는 것이 꽤 중요한 이슈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영 OO”라는 용어들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 말에 조롱의 함량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영한 그룹에게는 이 말이 그다지 높은 설득력을 지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히 어려보이려고 하고,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젊은이들에 원하는 것은 꼰대나 어려보이려고 노력하는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스러운 어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닮고 싶은 어른이 없다는 것, 롤모델이 부재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젊은이들의 혼란감을 한층 더 깊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들에게 좋은 경로를 보여줘야 할 어른들이 오히려 자신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보여지길 원한다면 이들은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다시 지금의 나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거야?”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직 자신이 누군지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동일시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켜나갈 롤모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스포츠 스타일 수도 있고, 영화 배우일 수도 있고, 은사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 중 한 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자신보다 나이든 사람들만 있고 정말 성숙한 어른은 없다면, 기성 세대가 후대에 지성과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그저 평등하기만 한 형제 자매, 영어로 sibling이기만 하다면 그 사회가 과연 옳게 작동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더 나아가 나이 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고 후대를 위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젊은 세대들을 따라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젊은 세대들에게 좋게 보일까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사회 상황의 반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닮고 싶은 사람, 뭔가 배울 것이 있는 사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influence)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롤모델이었으며,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바탕으로 2차적인 인플루언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인플루언서들은 요새 표현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한 것 외에는 특별히 배울만한 특질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등대와 방향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은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의 행동과 생각을 닮고 싶어합니다. 정말 중요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유명해지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와는 무관하게 어떤 행동이든 하려고 하는 일부 인플루언서들의 행동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저는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돈과 물질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지금과는 속도가 달랐던 과거에 어른들은 경험과 지식을 내부에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걸어온 세월에 대한 존중을 받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을 거스르려고 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면서 존중이 아닌 조롱을 받는 나이 든 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좋은 어른,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에 비해 내가 가진 나은 것이 무엇일까, 내가 나이가 어릴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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