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친구의 아버님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너프(enough)야!”라는 말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살고 계시던 분이라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었는데, 나이가 조금 드니 왜 그 말을 자주 하셨는지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아왔던 교육은 늘 방향이 비슷했습니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는 문제를 풀게 한 뒤 틀린 문제가 있으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지요.
모든 문제를 다 맞는 일이야 일부 특출 난 이들의 일이니 저를 포함해 많은 이들은 평생 “넌 OOO이 부족하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면서 성장합니다. 이런 형태의 평가 시스템을 가진 국가에서 자란 이들은 아마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체 우리는 언제나 부족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과 문화도 그러합니다. 늘 뭔가가 부족합니다.
더 이상 편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는 늘 뭔가 결핍에 허덕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터치 몇 번으로 집 앞까지 음식이 배달되고, 추위와 더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질병과 감염으로부터도 정말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뭔가 더 원하고 있습니다. 늘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쫓깁니다. 저 차만 있으면 내 삶이 더 완전해질 텐데, 저 시계를 차면 내 모습이 더 완벽해질 텐데, 저 집에 살면 내 인생이 완성될 텐데, OO원이 있으면 그땐 우리나라의 상위 몇 %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와 남들이 세워둔 기준에 우리는 늘 부족합니다. “이 정도로 충분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누군가 뭔가를 물어왔을 때 “충분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충분히 잤고, 오늘은 충분히 쉬었고, 저녁은 충분히 맛있었고, 충분한 운동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크고 있고, 충분히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녀를 바라볼 때도 “넌 지금의 너로 충분해”라고 말하는 것이 “넌 OOO이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자칫 우리의 말 한마디가 자녀가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노파심이 들기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정도로 우리의 말 한마디가 자녀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가 옳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럴 때 항상 정답은 둘의 중간 어디 즈음에 있는 법이긴 하지요.
항상, 그리고 모든 것에 있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를 생존해야 한다는 위기감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를 스트레스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지요. 잠깐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것이 몇 년, 몇 십 년 쌓이면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가 됩니다. 늘 부족한 존재로, 늘 생존을 위해 다급하게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것이 무조건 우리 자신에게 좋을 리가 없지 않을까요. 늘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야 없더라도 가끔은 “그래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져도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부족한 모습을 봤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기준일테니 “넌 니 모습으로도 충분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랑의 따뜻한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요. 서로를 다그칠 기회야 늘 있지만, 서로에게 따뜻할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으니까요. 만성적인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 친절하고, 상대에게도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아마 “충분하다”라는 말버릇을 들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쓴 이 글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충분히 날씨가 좋았고, 충분히 걸었고, 식사는 충분히 맛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은 아주 충분한 날이었습니다. 내일도 충분한 하루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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