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 특히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인간은 그 책임을 어디엔가로 돌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무생물이나 혹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 개념의 탓을 하기보다는 어떤 개인의 탓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가 아닌가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건의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원인이 불분명한 사건에 대해서도 반드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원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논리적으로 귀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패턴을 찾아낸 뒤 스스로를 설득하고 없던 원인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인간은 왜 꼭 원인을 찾고자 할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욕구 때문일 것입니다. 원시적인 부족에게는 샤먼들이 있는 경우가 많죠. 가령 예를 들어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를 망치면 샤먼은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리고 비가 오면 샤먼은 살겠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가뭄의 책임을 그 샤먼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목숨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어떤 시점부터인가는 왕도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막강한 권한과 온갖 자원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리고 그것이 설령 인간이 할 수 있는 역량 밖의 일이라고 해도 왕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원인을 찾으려고 하며, 원인을 찾게 되면 그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합니다. 그런데 돌멩이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엘니뇨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일을 그르쳤을 때 인간들에게 발생한 분노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희생을 해야만, 더 원색적 표현으로는 피를 봐야만, 분노가 가라앉습니다. 그제야 신의 격노가 수그러들 것이기 때문이죠.
지금도 이런 경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우리는 그 첫 번째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떠올리며 우리 인간들의 방만한 자원 사용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지 않습니다. 폭설이 왔을 때 우리는 분명히 눈이 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면 적절한 제설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연재해는 사실 인간이 예측을 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대응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담당자나 지자체장을 비난하며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어떤 일이 결정되고 실행되는 데 한 사람의 힘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해본 사람이면 조직의 의사 결정 구조가 어떤지 대충 알고 있고, 조직이 어떤 식으로 책임을 분산시키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어떤 실수, 특히 체계적인 실수가 발생하는 것은 한 개인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결함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한 개인을 탓하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에 우리는 분통을 터뜨릴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찾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비난받는 그 당사자가 되어 보면 얼마나 억울한지 알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은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역할을 할 뿐이니까요. 결정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과연 한 사람이 내린 결정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희생양을 찾고자 합니다. 누가 원흉인가.
그래서 가끔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과연 정말 이것이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인 것인지. 혹시 이것이 체계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오류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지 말입니다.
어떤 문제를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개인의 자원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라면 분명히 개선의 여지가 높습니다. 갑작스레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에 에너지가 적게 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늘 희생양을 찾아내고야 마는 우리의 시각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시스템도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일단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낼 희생양을 급조해 내는 데 급급할 것이며 시스템은 책임을 면제받을 것입니다. 그 피해는 비난받는 개인과 손가락질한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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