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인지적 무의식 - 프레임과 범주는 의식적 작용일까

RayShines 2022. 3. 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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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지적 무의식(cognitive unconscious)이란

우리는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는 것 외에는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저 깊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무의식을 선사했다. 우리는 감추고 싶은 것, 억눌러야 하는 생각들, 추악한 감정들은 모두 무의식의 창고 속에 던져 넣고 그 문을 잠가버렸다. 그러나 프로이트 말고도 표면 아래 숨겨져 있는 그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고 있었던 선각자들은 있어왔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을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를 모는 마차부에 비유했다. 한쪽은 세련되고 잘 정돈된 욕망을, 다른 한쪽은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적 충동을 상징한다. 쇼펜하우어는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며, 프랜시스 골턴은 인간의 정신을 복잡다단한 가스관, 수도관 위에 세워진 집으로 묘사했다. 우리 자신도 알고 있다. 밤늦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충동과 그렇지 말아야 한다는 이성적 촉구 사이에서 고민해본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지는 무의식과는 배치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인지, 이성 등의 용어는 우리의 이해가 닿는 곳에서 벌어지는 과정들에 쓰이는 용어인 경우가 많고, 무의식이라는 말은 정확히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적 무의식이라는 용어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인지적 무의식은 정보가 의식화되는 것을 억누르기 때문에 무의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조직되는 과정에서 정보의 처리가 의식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을 할 때 의식적으로 문법을 따지지 않고도 문법을 거스르지 않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고도의 인지적 작용이 무대 뒤에서 이루어지는 동안 우리는 무대 위에서 의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인지적 무의식은 완전히 의식적인 능력과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는 반사적 행동 사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것, 목적지로 특별한 고민 없이 걸어가는 것 등이 모두 인지적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프레임은 인지적 무의식이다.

언론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프레임도 인지적 무의식에 해당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창문이다. 관이라는 말이 붙는 모든 것이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관, 가치관, 경제관 등 다양한 관이 있고 이 다양한 관들이 조합되며 한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총체적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동시에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 행동하고 사고하는 방식,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 등을 결정하며 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인지적 무의식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거기 접근할 수 없다.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결과물을 통해서만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추론할 때 그 과정 중에 우리가 가진 프레임이 수면 아래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보고도 사람마다 정반대의 추론 결과를 내게 된다. 

 

 

정신 작용의 많은 부분이 수면 하에서 일어난다.

 

3. 범주도 인지적 무의식의 일부이다.

사물과 사건을 범주화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에 가까운 능력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표효하는 털이 난 네 발 짐승은 피해야 한다. 풀을 먹고 커다란 눈이 좌우로 달라붙은 동물은 비교적 순하다. 다리가 없고 몸에 비늘을 가졌고 혀를 날름거리는 길쭉한 동물은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 경계해야 한다. 만약 모든 대상을 개별적으로 다 학습해야만 했다면 인간의 생존 확률은 매우 낮아졌을 것이다.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다면 늑대도 피하는 것이 좋다. 뱀에 물린 적이 있다면 독이 없는 뱀일지라도 주의해야 한다. 달콤한 향이 나는 과일은 대부분 먹어도 괜찮다. 범주화하는 능력은 인지적 자원과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고, 동시에 생존 확률은 높여주었다. 우리는 대상을 보면 그 대상을 어느 파일에 정리해야 할지가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가 대상을 범주화한 다음에는 그 대상이 적절히 범주화되었는지와는 관계없이 그 범주의 평균적 특질을 범주에 속한 대상 전체에게 무분별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범주화라는 말은 가, 나, 다라는 특징을 가지면 A라고 분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범주화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며, 다라는 특질을 지닌 대상은 A에 속하니 그 대상은 무조건 가, 나라는 특질도 가질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범주가 매우 광범위한 대상들을 아우른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종, 정치적 진영, 성별, 성적 지향 등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특정 인종의 평균적 특질을 그 인종의 모든 개인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그것은 차별이다. 
인간은 범주와 도덕을 결부 짓는 경향이 높다. 내가 속한 범주는 도덕적이고, 적이 속한 범주는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대방 집단을 악마화하기도 한다. 그 집단에 속한 개개인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 집단의 특질 중 가장 추악한 것을 그 집단의 전체적 특성으로 결론 지은 뒤 그 추악한 특질을 집단 개개인에게 분별없이 적용한다. 반대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개개인들은 모두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고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정치적 진영, 성적 지향 등의 범주와 관련된 논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4. 범주화를 피할 수는 없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범주화는 인지적 무의식의 영역에 해당한다. 반사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인지적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차곡차곡 쌓이며 굳건한 프레임들을 구성해낸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번 인지적 활동을 할 때 역시 수면 아래서 작동하며 사고의 물길을 결정한다. 범주화 과정 자체를 피하긴 어렵다. 그리고 범주화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대상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범주화는 우리가 심리적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도와주고, 빠른 속도로 세상을 판단하게 해 준다. 그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없을 것이므로, 범주화 과정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합당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조절해볼 수 있는 것은 무분별하게 범주화가 역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 범주에 속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대상이 그 범주의 일반적 특질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순히 세상에 금을 긋고 적과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범주와 프레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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