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작업 기억 | 우리가 7개 이상을 외우지 못하는 이유 | 7±2인 이유 | Miller's Magic Number Seven | 밀러의 수 | 매직 넘버 세븐 | Working Memory

RayShines 2022. 3. 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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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짧은 기간 동안 정보를 저장하고 이와 관련된 작업을 수행하도록 보조하는 기억을 작업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업기억은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한 번에 7개 이상의 아이템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작업 기억은 RAM과 비슷합니다.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은 앨런 바델리(Alan Baddeley)가 만든 용어로, 짧은 기간 동안 정보를 저장하고, 이 정보와 연관하여 벌어지는 인지적 작업들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억의 한 종류입니다. 우리의 뇌를 책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랍 속에 들어 있는 장기 기억의 파일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거나, 혹은 지금 당장 벌어지는 일들을 책상 위의 노트에 적는 것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SSD가 아니라 RAM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RAM의 정보처럼 작업 기억도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사라집니다.

 

 

기억은 그 지속 정도에 따라 즉각 기억(immediate memory), 단기 기억(recent memory), 장기 기억(remote memory)으로 분류하는데, 각각 그 지속 시간은 수 초, 수 분에서 수 일, 수개월에서 수년으로 나뉩니다. 이 중 즉각 기억은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고, 현재의 주제에 집중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작업 기억은 즉각 기억과 단기 기억에 걸쳐 있는 개념으로 단기 기억의 특별한 한 형태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등쪽 가쪽 전전두엽 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은 작업 기억을 기록하며 특정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기댓값과 그 확실성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정한 대상의 감정적 가치 역시 작업 기억에 저장되는데, 이는 목적 지향적 행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작업 기억은 용량에 아주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밀러의 수, 매직 넘버라고 합니다.

작업 기억은 그 용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최대 7개 정도의 정보를 작업 기억에 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는 작업 기억을 운용하는 역량이 매우 뛰어난 사람의 경우이고, 대부분 그보다 적어서 4~7개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파일과 노트의 숫자를 다 합쳐도 7개 정도가 최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밀러의 수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조지 아미티지 밀러는 마법의 수(magic number)가 7±2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혹은 인간 중 아무리 지능이 뛰어난 사람도 한순간에 9개를 초과하는 정보 단위들을 두뇌 내에 담아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1995년에 발표된 ”Storage of 7 ± 2 Short-Term Memories in Oscillatory Subcycles”이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은 왜 인간의 작업기억이 5개에서 9개 사이 정도의 아이템만을 보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파장의 뇌파를 이용해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하나의 의견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볼프 징어의 연구에 따르면 시각 피질에서는 진동수가 40Hz 인 뇌파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40Hz짜리 파장이 나올 때 진동수가 5~7Hz 정도인 세타파가 함께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40Hz짜리 파장과 5Hz 파장이 짝을 이루어서 나온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아래의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40Hz 파장과 5Hz 파장이 함께 나온다는 것에 착안하여 5Hz 파장이 40Hz 파장을 배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 개의 고주파(진동수가 높은 파장)가 하나의 저주파(진동수가 낮은 파장) 내에 포함되어 진동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령 1초에 5번에서 12번 정도밖에 진동하지 않는 저주파 내에 1초에 40번 진동하는 40Hz짜리 고주파가 포장되어 전달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1초에 5~12번 진동을 한다면 파장 하나의 길이는 83~200ms입니다. 이 저주파 안에 40Hz, 즉 파장 하나의 길이가 25ms인 고주파가 여러 개 들어갈 수 있다면 몇 개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요? 대략 4개(100ms)에서 8개(200ms)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뇌파의 주파수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약간 수치가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대략 계산을 해보면 40Hz짜리, 즉 그 길이가 25ms인 파장이 파장이 4~10Hz, 즉 길이가 100~250ms인 파장 내에 쏙 들어가서 포장된 채로 진동하며 전달된다면 가장 적게는 100/25인 4, 가장 많게는 250/25=10개, 즉 4~10개가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정확하게 파장의 길이가 맞아떨어지진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저주파 1개 내에 고주파 5~9개가 포함될 수 있다고 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밀러의 수, 매직 넘버가 7임을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작업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숙고할 수 없습니다.

작업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숙고적 인지 과정이 작업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 기억은 심적 작업에 사용되는 대상의 표상을 저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 메뉴에 대해서 생각할 때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 레시피를 바꿔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집행 기능은 외부 환경 또는 신체 내부에서 얻은 감각 정보 중 어느 하나를 선별하고 여기에 주의를 집중하는 동시에, 이것과 관련된 장기 기억의 파일을 검색해 책상 위에 올려둔 뒤 이들을 일시적 활성 상태로 유지하는 과정 전체를 조율하는 기능을 의미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현재의 정보를 과거에 학습한 정보와 통합하여 새로운 정보를 형성해 책상 위에 새로운 노트 하나를 만들고 그 노트에 적힌 내용으로 정보를 사고, 추론, 계획 및 결정 등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작업 기억이 없이는 내적으로 활성화된 정보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집행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없으며, 집행 기능이 없다면 작업 기능은 실용적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요약하면, 작업 기능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일시적으로 내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는 기능, 즉 책상 위에 하나의 파일이나 노트를 올려두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기능은 책상 위에 올려진 여러 가지 노트나 파일 중 필요한 정보를 통합하여 새로운 노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작업 기억은 그 용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뇌의 책상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한 번에 도합 7개를 초과하는 노트나 파일을 펼쳐 두기 어렵습니다. 책상 위에 여러 개의 노트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으면 우리의 작업 기억에 과부하가 걸려 분명히 외면당하는 노트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혹자는 ADHD 환자의 경우 작업 기억에 과부하가 걸리는 시점이 이르고,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보 속에 섞인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소음 속에서 신호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직접 외우고 있는  지식과, 그 지식이 어디 있는지 내가 외우고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두 종류로 구분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내가 직접 알고 있는 지식, 다른 하나는 어디 있는지를 아는 지식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외우고 있는 것들과 어딜 찾아보면 그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아는 것들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논리적 사고나 추론에 비해 암기하는 능력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 것 같지만, 사실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암기한 지식만큼 정확한 동시에 신속한 지식은 없습니다. 우리 뇌의 검색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눈 깜짝할 순간에 필요한 정보가 저장된 서랍을 열고 파일을 꺼낸 뒤 정보가 위치한 행의 내용을 읽어 들여 작업 기억에 띄워둘 수 있습니다.

 

 

 

2023.03.26 - 작업기억 장기기억 | 디지털 기억상실증 | 프루스트 현상 Proust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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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만 알면 굳이 그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지식은 사람의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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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엄청난 정보가 떠다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우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외울 수 없으니 어디를 찾으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흔히들 합니다. 만약 정확한 정보를 찾아 읽고 그것을 작업 기억에 띄워둘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방법이긴 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작업 기억은 주의를 다른 데 돌리거나, 혹은 더 중요한 정보가 책상 위에 올라오면 꺼집니다. 작업 기억은 휘발성이 매우 강한 기억입니다. 인터넷은 정보의 보고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장기 기억의 서랍을 늘려주진 못합니다. 인터넷이 개인 기억의 하청업체라면 그것은 작업 기억에 대한 것입니다. 내 클라우드에 올려져 있는 정보 전체를 내가 장기 기억에 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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