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작업기억 장기기억 | 디지털 기억상실증 | 프루스트 현상 Proust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RayShines 2023. 3. 2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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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만 알면 굳이 그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지식은 사람의 머릿속에만 저장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지식도 함께 죽었겠죠. 물론 구전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구전은 그다지 효율적인 지식 전달 방법은 아닙니다.

 

 

 

종이학 접기와 학 그림 베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종이학을 접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것과 학의 그림을 베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이학을 접는 방법은 제대로 접을 수 있거나, 아니면 제대로 접을 수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학의 그림은 전달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첫 번째 그림과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종이학을 접는 방법의 각 단계는 매우 명확하며 오류나 조작이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 쉽게 말해 각 단계는 디지털, 즉 0 아니면 1입니다. 각 단계가 정확히 1로 이루어지든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 0으로 끝나든지 둘 중 하나이며, 연속적으로 1이 찍힌다면 종이학이라는 결과물이 산출됩니다.

 

그런데 학을 그리는 것은 각 단계의 구분조차 분명하지 않으며 선의 길이, 각도 등이 변형이 가해지 가능성이 그야말로 무한합니다. 사람마다 능숙도가 다르고, 그림을 그리는 데 쏟는 시간과 노력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들과 다르게 그리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그림과 만 번째 그림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매우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요.

 

구전은 학을 그리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오류 개입 가능성이 큽니다. 문자는 이것보다는 오류 가능성이 적습니다. 각 단어는 일종의 디지털 신호이고, 해석의 여지는 달라질 수 있으나 비교적 정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를 문자로 저장하고, 동시대인들과 후대에게 전달합니다.

 

지금까지는 지식은 책에 있다는 논리가 매우 명확하게 성립했습니다. 그래서 장서가 몇 권인 도서관이 몇 개 있느냐가 각 대학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상징적인 증거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자 그 대전제가 깨졌습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디 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는데 굳이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지요.

 

 

 

즉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 그리고 작업기억

우리의 기억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길이에 따라 즉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즉각기억은 수 초, 단기기억은 수 분에서 수 일, 장기 기억은 수개월에서 수년 지속됩니다. 그런데 작업기억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작업기억은 시간적으로는 즉각기억과 단기기억에 걸쳐져 있는 기억 분류로 수 초, 혹은 수 분간 정보를 저장하고 이 정보와 연관된 다른 인지적 기능들을 수행하는 데 기반이 되는 기억을 말합니다. 일종의 RAM이지요. 그 순간에 시스템에 있는 작업들은 기억하고 있지만 쉽사리 덮어쓰기 되고,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작업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뀌려면 뉴런들 간에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어야 하고, 또 형성된 연결에 반복적으로 신호가 흘러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수로를 내고, 물이 흐르며 수로의 바닥을 깊이 파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음번 물이 흐를 때도 킄 저항 없이 흐르며 장기기억에 있는 정보를 쉽게 작업기억으로 가져와서 다룰 수 있습니다.

 

 

 

2022.03.04 - 작업 기억 | 우리가 7개 이상을 외우지 못하는 이유 | 7±2인 이유 | Miller's Magic Number Seven | 밀러의 수 | 매직 넘버 세븐 | Working Memory

 

작업 기억 | 우리가 7개 이상을 외우지 못하는 이유 | 7±2인 이유 | Miller's Magic Number Seven | 밀러의

지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짧은 기간 동안 정보를 저장하고 이와 관련된 작업을 수행하도록 보조하는 기억을 작업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업기억은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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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터넷에 있는 지식을 찾아서 쓸 때 그것은 기억 중 작업기억에 잠깐 저장되는 형태에 속할 것입니다. 오래 기억되는 형태의 정보가 아니라는 의미이며, 그 개념과 관련된 사색과 음미 없이는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사라지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에 있는 지식들이 우리의 장기기억에 들어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찾아볼 때만 잠깐 알고 있는 지식은 우리의 지적 기량 내에 있는 지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자 노력하는 기관입니다. 실제로 피험자들에게 문장 하나가 끝날 때마다 컴퓨터 문서에 타이핑해 넣으라고 한 뒤, 한 그룹에게는 자동으로 저장이 된다고 알려주고, 다른 그룹에는 시간이 지나면 삭제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과제가 끝난 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타이핑해넣은 문장이 사라진다고 알려준 그룹에서 더 많은 문장을 기억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컴퓨터가 알아서 저장을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룹은 굳이 자신이 그 문장을 기억할 필요가 없었음을 깨닫고, 기억의 임무는 컴퓨터에게 완전히 일임했습니다. 문장들은 작업기억에 들어왔다가 바로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이제 정보 그 자체보다 정보의 위치, 경로를 더 중요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정보가 어딘가 저장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뇌는 더 이상 그 정보를 저장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자는 이를 구글 효과, 혹은 디지털 기억상실증이라고 부릅니다. 뇌가 정보나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로를 우선순위로 삼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작업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이관되고,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개인적 경험, 알고 있던 지식 등과 전방위적으로 연결되며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장기기억은 팽창하며, 지적 기량은 발전합니다. 인간의 뇌와 플래시 메모리의 결정적 차이는 검색 속도에 있습니다. 지금은 플래시 메모리들의 검색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져서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경우 원하는 정보가 제대로 저장되어 있기만 하면 의식하는 순간 관련된 정보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엄청난 기능이지요. 장기기억의 창고에 들어있는 정보를 소환해 내는 과정이 빛의 속도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단지 그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억이나 정보와 연계된 정보들도 좌르르 떠오릅니다 연상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요. 특히 후각과 관련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꺼번에 해일처럼 몰려오는 것이지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들렌을 차에 적셔 입에 넣는 순간 펼쳐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린 작품이지요. 그래서 이 현상을 마들렌 효과, 혹은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결론은 기억이 우리가 가진 가상의 데스트탑으로 올라오는 방식이 매우 빠르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여러 다른 기억들도 연상되어 함께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장기기억이 더 공고해지기 위해서는 사색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나만의 기억들, 나만의 지식들과 더 끈끈하게 엉길수록 더 장기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기존 지식들과 활발하게 네트워킹되어야 지식이 지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 있는지를 아는 지식은 아직 정제되지 않는 데이터에 가깝습니다. 데이터가 정보가 되고, 정보가 지식이 되고, 지식이 지혜가 되려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 음미하는 시간, 반추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 자료 :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인스타브레인(안데르스 한센),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한나 모니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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