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ECHO 3 | 에코 3 | 감상 | 후기 | 애플티비 | 애플TV | 드라마

RayShines 2023. 1. 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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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TV의 드라마 에코 3를 보고 생각나는 점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에코 3에는 제목처럼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밤비, 에릭, 그리고 앰버입니다. 밤비와 앰버는 남매이고, 에릭은 앰버의 남편입니다. 루크 에반스가 연기한 밤비라는 인물은 캐릭터의 이름과는 달리 델타포스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에릭의 아버지는 군수기업의 총수로 보입니다. 금수저인 에릭은 목적 없는 삶을 살다가 앰버를 만나고, 그리고 앰버의 오빠인 밤비를 만난 후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밤비는 어린 시절 동생인 앰버를 학대하는 양아버지를 총으로 살해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사람처럼 그려집니다. 그리고 에릭과 결혼하는 날 앰버가 같이 작전에 나가면 꼭 그를 데리고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을 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에릭과 함께 나간 작전에서 다른 팀원과 에릭 둘 중 한 명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닥치자 그는 에릭을 구하게 되고 다른 팀원은 사망합니다. 이 시점부터 뭔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갈등들이 시작됩니다. 에릭은 팀원을 포기하고 자신을 구한 밤비를 비난합니다. 열등감 때문인 것인지, 죄책감 때문인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우리나라 촌수로 치면 형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에릭과 앰버와의 관계도 썩 좋지 않습니다. 엄청난 부를 지닌 집안에서 태어나 델타 포스로 복무한 경력까지 가지고 있는 에릭은 정치계에까지 진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앰버는 그런 삶에 별다른 행복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연구를 위해 콜롬비아로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앰버가 걱정되었던 에릭은 앰버의 배낭에 몰래 군사용 GPS를 숨겨 넣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악몽의 발단이 됩니다. 앰버의 GPS가 반군 세력에게 발각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앰버가 과거 CIA와 일했었다는 경력이 알려지면서 앰버는 반군들에게 납치를 당합니다. 이 시점에서 앰버는 자신의 통제, 혹은 감시하려는 듯한 에릭에게 환멸을 느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밤비와 에릭이 콜롬비아로 옵니다. 그리고 둘은 앰버를 거의 구할 뻔 하지만 눈앞에서 놓칩니다. 여기까지 조금 답답한 전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은 이제부터는 델타포스가 등장하는 밀리터리 장르에 걸맞는 전개가 펼쳐지리라 기대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게 아닙니다. 극의 톤이 갑자기 더 다운되고 앰버는 베네수엘라 군사 기지에 갇힙니다. 밤비는 반군의 기지로 숨어들기 위해 술주정뱅이 행세를 합니다. 그런 밤비를 찾아 나선 에릭은 그런 작전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실권을 지닌 통수권자의 동생을 납치해서 거래를 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델타포스의 레전드라고 불렸다던 밤비는 그와 걸맞지 않게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에릭의 계획을 따릅니다. 그 와중에 밤비와 앰버의 어머니가 콜롬비아로 갑자기 찾아오는 극의 전개에 별 필요 없어 보일뿐더러 답답하기까지 한 상황도 펼쳐집니다.

결국 두 사람은 군사 작전을 펼칩니다. 콜롬비아 군복을 입고 베네수엘라 군기지에 잡입하여 앰버를 구하고 원래 마약 소굴이기도 했던 기지를 폭발시켜 버립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앰버는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에릭과의 관계를 끝내려 합니다.

에코 3는 아쉬운 점이 많은 드라마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에코 3는 좀 이상한 드라마였습니다. 가장 이상한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여주인공, 그런 여주인공을 지키려고 양부를 살해한 남주인공 사이의 결속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극에서 꽤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보이는 앰버가 CIA와 공조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 앰버가 어떤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민간인 수준의 일을 했던 것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어서 10편 내내 거의 갇혀만 지내는 앰버가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예측이 되지 않는 부분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에릭의 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때문에 팀원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자신을 구해준 밤비를 비난하는 에릭의 생각이 거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이상한 부분은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축약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불필요한 부분들이 꽤 많았고 10부작에 맞추기 위해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시리즈에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갈등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은 무력이고, 그 이후에는 거짓말처럼 갈등은 사라지고 미국은 위대하다로 마무리하는 그런 클리셰일 것입니다. 그게 아무리 판에 박힌 스토리라고 하더라도 무겁고 깊은 마음으로 볼 드라마가 있고, 가볍게 머리를 비우고 보는 드라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며 우리는 어떤 마인드셋으로 이 드라마를 볼지를 어느 정도 정해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 극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것 자체가 설득력을 지녀야 하고, 그 일탈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있든, 아니면 시각적 즐거움이 있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에코 3는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심리적인 묘사와 갈등에 치중하기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고, 그렇다고 시각적 즐거움에만 치중했다고 보기에는 10부작이라는 길이가 너무 깁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9편에서 보여지는 액션씬들은 꽤 괜찮고, 10편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은 꽤 긴장감이 넘치긴 합니다. 중간의 부분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냥 9편과 10편으로 뛰어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늘 도덕적 판단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셀 수 없이 희생시키고, 타국에 전쟁까지 일으킨다는 이야기 구조는 그런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극의 아래 그런 무거운 주제가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해서 이 정도로 무거운 톤으로 제작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대부분의 액션 영화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세상 전부를 희생시켜도 좋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고, 현실에는 불가능한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해소를 느끼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에코 3의 주인공들은 셋 다 심각하고 복잡하고 고뇌에 차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고 상대방의 말을 따라할 수만 있는 에코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나르시수스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에코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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