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중독과 장단기 금리 역전 | 채권 수익률 곡선 역전 | Addiction | 시간 할인 | 지연 가치 폄하 | 현재 편향 | Temporal Discounting

RayShines 2023. 4. 22. 00:00
반응형

장단기 금리 역전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금리는 쉽게 말하면 돈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돈을 빌리는 것과 1년 동안 돈을 빌리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비싸야 할까요? 당연히 10년 동안 돈을 빌리는 것의 값이, 즉 이자율이 더 높아야 할 것입니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돈을 빌려간 사람이 갑자기 어디로 도망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직업을 잃을 수도 있고, 건강이 나빠져서 돈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때문에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니 이것에 대한 보상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겠죠.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1년 동안이라면 돈을 빌려준 측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적습니다. 물론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전혀 모르지만 1년 사이라면 그래도 왠지 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요. 그렇기 때문에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가 더 높고, 그게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가 더 높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채권 시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때 채권 수익률 곡선 역전, 장단기 금리 역전 등이라고 부릅니다. 미국 채권 시장에서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와 2년 만기 미국 국채의 금리 차이, 영어로는 스프레드(spread), 를 장단기 금리 차이를 평가하는 데 씁니다. 일반적으로는 10년 만기 채권의 금리가 더 높을 것입니다. 10년 동안 돈을 빌려준다는 증서이니까요. 따라서 10년 만기 채권의 금리에서 2년 만기 채권의 금리를 뺀 스프레드는 양의 값입니다. 그런데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이 값이 음으로 돌아섭니다. 다시 말해 단기 금리가 더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장단기 금리의 역전은 경기침체에 선행하는 지표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주 단순히 생각하면 ‘당장 2년 뒤의 일도 모르는데 10년 뒤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 단기적인 리스크가 너무 높으니 만기가 짧은 채권의 이자를 더 많이 받자!’고 하는 상황입니다. 금리를 결정하는 요인에 만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리스크도 당연히 금리에 반영이 되는 것이 상식적이겠지요. 장기적으로는 어떻게든 리스크가 해소되겠지만, 단기적인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생각되면 단기 금리가 더 올라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기 자금의 금리가 더 올라가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채권의 금리를 결정하는 또 다른 강력한 요인 중 하나는 시장 참여자들이 갖는 금리에 대한 예상입니다. 예를 들어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다는 예상이 시장에서 지배적이라고 해보겠습니다. 10년 뒤에는 금리가 정상화되겠으나, 일단 앞으로 1~2년 사이에는 높은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죠. 이런 환경이라면 새롭게 발행되는 채권은 이미 발행되어 있는 채권보다 금리가 더 높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 채권들은 투자 매력이 떨어집니다. 이자가 적으니까요. 그런데 채권은 일정 금액을 주고 산 뒤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이율의 이자를 받는 상품입니다. 동시에 채권은 액면가와 무관하게 시장에서 거래될 수도 있는 상품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액면가 10000원, 5%짜리 채권이 있어 매년 500원의 이자를 받는다고 하죠. 그런데 금리가 10%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앞으로 액면가 10000원짜리를 사면 연 1000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기존에 나와 있는 10000원, 5%짜리 채권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야 시장에서 팔릴 테니까요. 어디까지 떨어질까요? 수익률이 새로 나오는 채권 수익률과 같은 10%가 되는 지점까지 떨어질 것입니다. 연 500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 역산을 해서 10%가 되려면 5000원까지 가격이 떨어져야 합니다. 채권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채권의 수익률이 올라간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시장 금리가 올라간다는 예상이 있으면 채권의 가격은 떨어지고, 수익률은 상승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장단기 금리 역전은 장기적 가치보다 단기적 가치가 더 높아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치의 대상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10년 뒤는 모르겠고, 일단 내년이 더 중요하다는 외침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리스크의 측면에서도 단기적인 리스크가 훨씬 더 크며,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 역시 크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중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오피오이드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다음의 빈칸을 채우도록 요구했습니다.

 

“빌은 아침에 일어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는 (    )를 예상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나머지를 쓰고 저한테 돌려주세요.”

 

결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중독자가 아닌 이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미래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4.7년 뒤였습니다. 즉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 미래라고 하면 5년, 10년 뒤의 이야기를 한다고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독자들의 경우 얼마 뒤를 미래라고 생각했을까요?

불과 9일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미래는 9일 뒤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장기적 조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가 현재와 가까운 시간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장단기 금리 역전과 같은 상황이지요. 곧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는 의미, 파국이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중독은 쉽게 말하면 장기적 가치를 가불 받아서 현재에 놓고 불태워버리는 행동과 비슷합니다.

원래 사람은 먼 미래보다 가까운 미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시간 할인, 지연 가치 폄하, 현재 편향, 시점 할인 등 다양한 용어로 부르며, 영어로는 temporal discounting 이라고 합니다. Temporal에 ‘시간적’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는 용어입니다. 너무 먼 미래만 생각하고 당장 배가 고픈데 음식을 아끼고 먹지 않는 개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어느 정도 할인하는 경향은 우리가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유인을 발생시키고, 생존에도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고려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예상을 하고, 준비를 하고, 10년 계획을 세우며 당장의 욕구를 지연하죠. 그리고 욕구를 지연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스탠포드의 마시멜로우 실험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눈앞의 마시멜로우를 먹어치우지 않았던 아이들이 장기적으로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에 내가 가진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는 능력일 것입니다. 장단기 조망을, 다시 말해 장단기 금리를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독에 빠지면 이런 경향이 현재 쪽으로 극단적인 편향을 보입니다. 미래의 가치는 극단적으로 할인됩니다.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당장 받으면 조금 덜 받아야 하고, 1주일을 기다리면 당첨금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해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1주일을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독자들의 경우 20%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당장 돈을 받겠다고 합니다. 중독자가 아닌 그룹에서는 그 비율이 2%에 불과했습니다. 1주일 뒤의 미래도 극단적으로 할인된다, 즉 1주일 뒤의 미래의 가치가 현재에 비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기다릴 수가 없다, 혹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가치보다 단기적인 가치가 높아진 장단기 금리 역전 상황, 그러니까 곧 경기침체가 발생하고 기업과 개인이 파산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기가 목전에 다가와 있는 것이 바로 중독인 것 같습니다.

참고 자 : Shortened time horizons and insensitivity to future consequences in heroin addicts(Petry, N. M., Bickel, W. K., & Arnett, M.), 도파민 네이션(애나 렘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