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일은 정말 나쁘기만 할까요? | 노동 | 일의 역설 | 자기 효능감 | 몰입 Flow | 자의식의 감옥 | 프로이트 lieben und arbeiten | 로봇

RayShines 2023. 7.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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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는 것은 힘듭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노동이니까요. 그런데 일에서 얻는 것이 돈과 스트레스뿐일까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 보입니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배울 때 일은 자아실현의 한 방편이라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선택 편향이 강하게 작용하긴 하겠습니다만, 전 제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을 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SNS에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주 100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공한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을 할 때마다 정말 저래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아마 저렇게 해야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가능한가 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로봇의 태생적 역할은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로봇 robot 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으로 카렉 차펙 Karel Capek이 쓴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 R.U.R. Rossum’s Universal Robot>에서 입니다. 여기서 로봇이라는 말은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체코어 로보타 robota 에서 비롯했다고 하며, 이 단어는 고대 체코어로 예속을 뜻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희곡에 등장하는 로봇은 안드로이드 같은 형태의 노동하는 노예 같은 존재로 인간을 대신해서 일을 대신합니다. 로봇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이 인간을 대신 노동에 예속되는 대신, 인간은 힘든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그 역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노동은 힘든 것, 그래서 기피하고 싶은 것이었고 기회만 된다면 일하지 않고 놀고먹고 싶은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표 중 하나가 건물주가 되어서 편하게 놀면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 되었죠. 실제로 건물주들이 마음 편하게 놀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직장에 나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오히려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몰입 flow 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했던 연구가 있습니다. 근로자 100명을 대상으로 하루 7차례 무작위로 당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당시 어떤 당면한 도전은 어떤 것이었는지, 당시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동기, 만족감, 참여 정도, 창의성 등에 대한 설문을 작성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를 고려한다면 이런 류의 질문에 대해 좋은 대답이 나올 리 만무할 것 같죠. 제 스스로도 저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가장 부정적인 답변을 택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보다 일을 하고 있을 때 더 큰 행복과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칙센트미하이는 이를 일의 역설 paradox of work 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에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가 시간보다 일을 할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끼는 일의 역설이 일 중독자들에게만 발생하는 일일까요? 그렇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가장 큰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할 때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 중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그 기술을 사용하며 그것이 더 연마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목표 자체에 몰두하고 몰입할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쉬는 시간에는 목표가 없고, 그래서 훼방을 받습니다.

쉬는 시간은 일상입니다. 일상에는 일상의 근심이 묻어 있습니다. 맘 편하게 쉰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있는 공간에 있다 보면 일상의 걱정과 소일거리들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쉬는 것 자체에 몰입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사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쉰다는 것은 뭔가를 능동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가 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즉 아무런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근심과 걱정으로 흐트러집니다. 반면 일을 할 때 그것이 좋든 싫든, 크든 작든, 어떤 목표를 정해두고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이 경주할 때는 이런 일상의 부스러기들이 우리의 의식에 닿지 않고 잠깐 물러서게 됩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외부에 집중하지 못해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자의식의 감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의 상황처럼 외부에 집중할 것이 없어지면 우리의 의식은 자신의 내부, 어떤 경우에는 우리 안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을 자의식의 감옥 jail of self-consciousness 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공백을 싫어합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정말 일부 도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처음 예술이 시작된 이유가 텅 비어 있는 벽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백색 공포라고 합니다. 텅 비어 있는 하얀 벽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공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벽에 낙서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은 커다란 원 앞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 원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원 중앙에 점을 찍습니다. 그러면 원은 기준점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의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는 실체를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이집트인들이 끝없이 펼쳐진 막막한 사막 위에 피라미드를 세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를 극복하기 위해 거기 점을 찍고 기준을 부여한 것입니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뇌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활성화되는 부분을 default mode network이라고 하는데, 이때 활성화되는 부위는 주로 내적 사고,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상당히 겹칩니다. 이것이 자의식의 감옥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걱정이 따라오니까요.

 

 

 

프로이트가 말한 일하고 사랑하는 능력 lieben und arbeiten 은 현대 사회에서도 성립합니다.

일은 물론 힘들고 싫은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사람이란 자고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은 휴식이 없을 때만큼이나 일이 없을 때도 인간이 망가지는 것을 봐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정신적 건강의 의미는 사랑하며 일하는 능력 lieben und arbeiten 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며 스스로에게 자신의 효용을 증명하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때 인간은 자기효능감 self-efficacy 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것이 행복감과 성취감으로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에겐 일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인간은 로봇이 아니니 적당한 휴식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외부의 목표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시간도 중요하니까요.

 

참고 문헌 : 디자인의 꼴(사카이 나오키), 뇌 과학의 모든 역사(매튜 코브), 유리감옥(니콜라스 카), 우울할 땐 뇌과학(알렉스 코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미학 오디세이(진중권), 움직임의 뇌과학(캐럴라인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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