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나이가 들면 허세가 하라지는 이유 | 우리 삶의 이야기 | 자기 서사화 Self-Narrativization | 이야기 편향 Narrative Bias

RayShines 2023. 9.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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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허세가 좀 사라진다고들 합니다. 우리는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고,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기기만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광택과 장식은 증발하고 각자의 역사와 그와 관련된 잘 정제된 감정만 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야기 편향, 영어로는 narrative bias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때 일련의 사건들이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 배열되어 있다고 여기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무수한 변수들은 모두 배제하고 매우 단순한, 혹은 매우 강력해 보이는 이유 한 가지가 어떤 사건을 발생시켰다고 생각하며 단순한 이야기를 만들어 삶의 이해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 인과율과 서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장 폴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 인간은 항상 이야기를 하는 존재이고, 자신의 이야기와 타인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며, 이야기를 통해 자신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을 본다. 또 그는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쓴다.”

 

 

 

실제로 나의 삶에는 별 이야기가 없음에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 자기 자신을 설득합니다.

이번에는 이랬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자기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에 조금 더 데코레이션을 하고 광을 내서 전달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한 이야기가 버전 1.0이었다면 첫 번째 타인에게 전달한 이야기는 버전 1.1 정도로 판올림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는 그 1.1이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다음번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는 1.2, 혹은 2.0으로 버전업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조금씩 변형해 가면서 우리의 삶을 편집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기억되고 싶은 버전의 우리를 자기 자신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진행된 우리의 삶의 끝없이 재창조합니다. 우리가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면서 그것을 편집할 때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뇌에서도 우리 자신의 삶을 편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미지만 편집하기도 하고, 자신을 폄하하기 위한 사건들만 남겨두기도 합니다. 그런 이미지와 사건들이 나열되며 하나의 이야기, 그러니까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서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찾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무질서한 별의 나열에서도 패턴을 찾아 별자리를 만들어냈고, 그 별자리마다 사연을 만들어 서사화했습니다. 문자를 읽는 것도 패턴을 찾는 것이고, 문장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패턴 찾기입니다. 우리의 뇌는 패턴을 찾고, 여러 개의 패턴을 조립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전체를 이해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패턴을 찾고, 패턴 사이를 연결할 인과관계를 찾아내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과 인생사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것을 자기 서사화 self-narrativization 라고 합니다.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자기 서사화는 큰 장점을 가집니다.

인간의 삶은 원대한 계획의 일부가 아니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된 것도 아니며, 신성한 목표를 향해 서서히 개선되거나 진보되어 가는 경로 위에 올려져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태어났고, 그저 죽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내가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나서 의미 없이 살다가 의미 없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의미를 부여합니다. 난 서로를 사랑했던 부모의 바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 부모가 가진 장점과 재능을 물려받아 어떤 직업을 갖고 사회에 기여했으며, 자신의 부모가 그러했든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길렀고,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온 가장 큰 의미 중 하나라는 그런 아름답고도 의미심장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이것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생을 조금 더 충실하게 살고, 그 안에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가치를 부여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죽으면 그만이라는 환원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삶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서사화는 우리에게 좋은 방패가 되기도 하고, 은신처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한 한 주먹의 모래로 쓰기도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그때 그랬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 내가 그때 시도하지 않은 것은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사람과 헤어진 것은 내 인생에 오히려 잘 된 일이었을 거야 등등 우리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상황을 숨 쉬듯이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SNS에서 그러하듯 자신의 모습 중 최고의 버전을 타인들에게 디스플레이하기 위해 멋들어진 이야기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각색해내기도 합니다. 내가 그때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였어,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직업이 날 선택한 것 같아, 난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 같거든 등등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인상적은 것으로 보이기 하기 위한 드라마를 써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우리는 우리가 써냈던 드라마를 내려놓고, 나의 진짜 모습을 가리기 위해 앞에 세워두었던 편집된 나 자신을 한편에 치워놓게 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더 이상 이야기 뒤에 숨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기 서사화를 할 때는 극적인 감정과 극적인 인과를 사용하지만 이것은 꾸며진 것일 테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안에서도 이물로 느껴지며 사라질 테지요. 새로운 버전은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 사용했던 자기기만과 장황한 미사여구는 사라지고, 건조한 사실과 세월의 테스트를 이겨낸 정제된 감정만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갑니다.

 

참고 문헌 :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스콧 스몰), 오래된 기억들의 방(베로니카 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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