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나는 피해자라는 생각 | 피해 의식 | 피해자 서사 | 트라우마 | 피해자화 Victimization | Victimhood

RayShines 2023. 12.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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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양육, 사회, 상황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사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다고 해도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에 기인합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DNA, 부모가 제공해 주는 자원, 자란 환경, 성장하면서 쌓아온 경험 등 과거에 두고 온 온갖 것들이 우리의 현재를 형성하는 데 모두 기여합니다. 어느 것이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정확히 수치화하기 어려울 것이고, 아마 사람마다 그 비율을 다르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환경이나 DNA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고, 천재지변이나 경기침체 때문에 경제적 파국을 겪은 사람은 거대한 환경적인 요인 앞에 개인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불행이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경험에 전적으로 기인한다는 생각을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과도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부정적 사건이나 상처가 되는 경험 한 가지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너무나 큰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 때문에 그 이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 고문, 자동차 사고, 전쟁 등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트라우마 경험이 겪은 이들이 현재의 불행을 그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 PTSD를 진단하는 기준 상으로 트라우마는 “죽음에 대한 위협, 심각한 부상, 성폭력 등에 대한 노출” 등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누군가에겐가 비난을 받은 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는 사건들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우리의 삶을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많은 일들은 그냥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인 것이지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하고 어떤 것은 포기를 하면서, 그 와중에도 즐거움을 찾으면서 살아갑니다. 행복과 불행은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삶의 섭리 중 하나이니, 늘 행복하기만 바랄 수는 없습니다. 살다 보면 안 좋은 일들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아플 수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명확한 원인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원인이 있긴 하지만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기 어려울 수도 있고, 그 원인을 비교적 정확히 안다고 해도 우리가 어찌해 볼 바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내가 어떤 병에 걸린 것, 금융위기가 발생해서 나의 삶이 곤두박질친 것, 하는 일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를 늘 찾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불행들은 비난할 대상이 없는 채로 일어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당연히 내 잘못도 아닙니다. 내가 이른 나이에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에 걸린다면 그것이 과연 온전히 나의 잘못일까요? 내가 물려받은 DNA가 발병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잘못일까요?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어떻게 하면 병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전문가와 상의를 하고, 지침을 세우고 잘 지켜나가는 게 더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화가 나면 비난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과 별개로 이런 상황에 대한 화가 날 수 있습니다. 화가 날 때 우리는 비난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우리 부모가 둘 다 혈압이 높은데 내가 너무 관리를 하지 않았지’하며 자기 비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반대로 ‘우리 부모는 둘 다 고혈압을 앓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나에게 먹여서 내 식성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어, 그 탓에 나도 젊은 나이에 혈압약을 먹게 됐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후회와 우울감이 따라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대한 원인을 나에게도 돌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습니다. 그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생양을 찾고 그 대상을 비난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해지면 그때부터는 마음껏 화를 내도 됩니다. 난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만약 사회 구성원들 중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보상을 요구하고, 자기 자신은 피해자이니 특권을 누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곳이 아니라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서로 날을 세우고 피하는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그런 데서 살려면 정말 피곤하고 힘들겠지요.

 

 

 

지금 내 모습에 대한 나의 역할을 인정해야, 미래의 나에 대한 현재의 내 역할도 성립합니다.

현재의 나의 모습에 기여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요인들 중에는 반드시 과거의 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크다고 할 수는 없을 수도 있지만, 내가 나의 현재에 기여한 부분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현재 나의 모습에 기여한 것이 과거의 어떤 사건, 과거의 어떤 사람, 과거의 어떤 상황 하나라면 미래의 나에 대해서도 난 할 것이 없습니다. 현재의 나를 만드는 데 대한 과거의 내 역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미래에 나에 대한 지금의 내 역할 역시 성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의 미래 또한 외부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종속변수가 될 것이며,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그 거대한 힘에 송두리째 잡아 먹히게 되겠지요. 그런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외부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습니다. 그것을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어떤 환경적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거나 내가 타고난 물리적 한계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모두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기여분을 계산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불행에 대한 나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미래의 불행에 대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덜 불행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픔과 불운을 겪고 실제로 너무나 큰 피해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잠식당하지 않고,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자신을 무조건적 피해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각자의 행복을, 늘은 아니더라도 때때로 느끼며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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