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창작의 즐거움 | 자신을 칭찬하기 위한 창의 | 개인적이고 목적 없는 창조 | 몰입 | 집중 | 행복 | 성취감 | 만족감

RayShines 2023. 12. 23. 00:00
반응형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입니다. 완전한 몰입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뭔가에 몰입할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몰입 flow 이라는 제목의 책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무엇엔가 완전히 빠져들어서 집중하면 그 자체가 인간에게 큰 만족감과 행복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했던 유명한 실험 중 하나가 근로자 100명에게 무작위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보고하도록 했던 것이었습니다. 실험 결과 놀랍게도 근로자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있던 때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이를 일의 역설 paradox of work 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왜냐하면 사람들을 놀 때보다 일을 할 때 더 즐거워하면서도, 놀 때가 아니라 일을 할 때 뭔가 다른 신나는 것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뭔가 자기가 원하는 재미있고 신나는 것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당연하죠. 그런데 정말 일의 역설을 실생활에서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혹은 먹고살기 위해서 꾸역꾸역 하는 일이라고 해도 당면한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집중하고 나면 뭔가를 성취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순간에 아주 가끔은 집중력이 깨어지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집중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리고 이 정로 강한 몰입의 순간으로 진입하는 것이 그다지 흔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에 몰입할 때 행복, 성취, 만족을 느낍니다.

 

 

 

몰입하는 동안에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몰입의 순간을 우리가 긍정적으로 경험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에 불쑥불쑥 떠올라 우리를 괴롭혔던 일상의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뭔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것에 나의 정신적 자원을 모두 쏟아붓는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는 평상시의 걱정은 잠깐 뇌 속 저 구석의 서랍 속에 처박히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걱정을 잠깐 잊는 것과 같은 말임을 고려해 본다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말입니다. 그리고 일을 즐겁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일상생활에서 몰입하기 가장 쉬운 순간 중 하나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뭔가에 완전히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거창한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짧은 글일 수도 있고, 간단한 요리일 수도 있고, 작은 공예품일 수도, 아니면 잡동사니들을 이어 붙여 만든 간단한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이 전체적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지금 하는 동작이 가져올 결과와 그 결과가 다음 결과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끊임없이 궁리하고 생각하며 그 순간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엄청난 심리적 보상을 준다는 것이지요.

 

 

 

개인적이며,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창의 활동은 즐거움의 원천이 됩니다.

물론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의 목적 중 하나는 감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이 감상할 수 없다면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수준의 창작에는 열광과 비난이 늘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철저한 무관심 속에 소외되었다면 보여지는 것을 목적으로 그것을 창작한 예술가에게는 참 마음 아픈 일이겠지요. 하지만 창작을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순전히 개인적이고 유희적인 목적으로 하는 창의적 활동에는 비평도 악플도 없습니다. 만약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재능이 없다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으로 인한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굳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받을 필요가 없는 창의는 개인의 작은 사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칭찬을 거의 듣지 못하는 어른으로서 우리는 자신을 칭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칭찬을 들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마치 의무인 것처럼 칭찬을 합니다. 잘 그렸다, 잘 썼다, 잘 만들었다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이런 말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축하하기도 어려운데 칭찬하기란 더 어렵겠죠. 그리고 그냥 립 서비스에 가까운 말이라도 생각할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누군가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한다는 것을 상대방에 무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죠. 그리고 이제 한편으로 칭찬은 SNS에 달리는 별이나 하트로 수량화되는 일종의 스펙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칭찬인지, 어떤 칭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그저 많은 칭찬을 받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됐습니다. 숫자가 높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숫자로 표현되는 것의 특성상 남들과 너무나 비교가 쉬워졌죠. 그래서 늘 상대적인 빈곤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칭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더라도 자신이 완전히 몰입해서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을 두고 우리 자신을 긍정적으로 느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이고 목적 없는 창의는 즐거움을 주고, 그 즐거움을 연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 유리감옥(니콜라스 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