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생명 | 삶은 명령일까요 |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요 |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RayShines 2024. 3.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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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살아야만 할까요,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명 生命 에는 명령 命令 에 쓰이는 명 命 이 들어 있습니다.

즉, 생이라는 것은 명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는 살아나가는 것은 주어지는 명령에 가까우며, 왜라는 의문을 갖기에 앞서 그 자체로 온당하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life는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며, 동사형인 live는 지속하다, 남아있다는 뜻에서 파생했습니다. 영어로는 우리말처럼 강력한 권위가 느껴지진 않습니다만, 동사형인 live가 ‘지속하다, 남아있다’에서 기원한 것은 삶 자체의 피동성이 어느 정도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구도 자신의 탄생을 결정하진 못합니다.

삶은 부모의 의지, 혹은 본능인 욕구에 의해서 시작될 수 있죠. 날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모를 조르는 자식은 없고, 그저 부모의 결합에 의해 잉태된 생명이 태어날 뿐입니다. 그리고 이 피동성을 설명, 혹은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문화적, 규범적, 법적인 장치들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이 대표적이죠. 내 몸의 모든 것은 부모가 준 매우 고귀한 것이니 머리칼 하나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대단히 좋은 말입니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이전 세대와 현세대 사이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미풍양속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성세대가 이후 세대에 대한 무분별한 소유권과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새로운 세대의 구성원들이 “난 태어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없고, 지금의 삶이 나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여러 버전의 삶 중 최선의 버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주장을 한다면 기성세대들을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신세대들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기성세대들도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세상이 말세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생명이라는 말, 그러니까 생은 명령일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부터의 명령, 혹은 군사부일체로 응축되는 수직적 질서에 따라 삶을 수용하라는 거부할 수 없는 권고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Gen Z로 표현되는 젊은 세대들이 가지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우리는 엉망으로 어질러진 세상을 물려받았고,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사회, 기성세대들에게 과도하게 편중된 부, 명시적으로 인정하진 않으나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계층, 그리고 갈수록 무너져내리는 계층 간의 이동을 위한 사다리, 게다가 환경 문제, 기후 문제 등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짓누르고 있는 노령화 속도와 노령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젊은 세대들이 지게 될 경제적 부하는 단순히 지갑이 가벼워진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세대 간의 혐오를 발생시키기 딱 좋은 조건을 조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패기가 없다, 나 때는 안 그랬다, 뭐라도 하라는 강요를 하고 있고, 젊은 세대들이 꿀 빨았던 세대들이 망쳐 놓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며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선조들이 아래로 내려준 것이니 감사히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생은 명일까요.

 

 

 

우리의 아이들에게 삶은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올리는 2000자 남짓의 짧은 글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겠죠. 그럴만한 능력도 없고요. 그러나 지금의 기성세대들도 젊었을 때는 되바라진다는 말을 들었던 때가 있고, 세상이 말세라며 탄식하는 꼰대들을 몰래 욕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세대에나 세대 간의 갈등은 있었고, 사회적 질서나 문화적 규칙이 그것을 표면화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따라 불거지거나 속으로 곪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의 인구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다음 세대로 문제를 떠넘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태어나는 이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고, 노쇠하여 살아남아 있는 이들의 숫자는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 “삶은 축복이며, 아름다운 명령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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