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우리 뇌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드레스 색깔 논쟁 | SURFPAD

RayShines 2024. 4. 13.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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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싫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지식이 불확실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의식화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경제 관련 뉴스를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불확실성에 해소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악재는 확실하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자꾸 듣다 보면 “아 그게 맞나 보다”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런 말이 있습니다. 위험은 측량 가능한 불확실성이며, 불확실성은 측량 불가능한 위험이다.(Risk is measurable uncertainty. Uncertainty is unmeasurable risk.) 경제학적 이론들은 이상적 상황에 놓여진 인간들의 이성적 판단을 전제로 할 때 성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경제라는 것은 감정에 휩싸여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사 결정이 모여서 구성되는 복잡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료를 소화해 내며 주가가 급등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면 유명한 연예인의 뉴스가 나온다고 해서 관련 테마주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늘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불확실성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잘 몰라도 그냥 습관적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처리할 때 꼼꼼하게 증거를 검토하고,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비교한 뒤 필요하면 추가적인 정보를 학습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잘 몰라도 그냥 판단을 내립니다. 아주 쉽게 시사 관련 이슈들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주택의 시장 가격을 전망합니다. 별로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결정을 내리는 것이지요. 인간들이 불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정보만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대한 결정을, 그것도 아주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내리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SURFPAD 입니다. SURFPAD는 Substantial Uncertainty Ramified Forked Priors Assumptions Disagreement의 약자로 불확실한 진실을 마주하면 과거 경험을 토대로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현실을 구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대체해 버리는 경향을 말합니다.
 
어떤 사건을 두고, 특히 그것이 매우 복잡한 사건이라면, 사람들은 그 사건과 관련된 정보 전체를 훑어보고 공부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특별히 집중하게 되는 정보의 조각이 생기게 마련이며, 사람마다 더 수월하게 학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의 단편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 일단 판단을 보류하겠어, 나중에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건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그저 무시해 버리고, 더 정확히는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하게 억누르고, 판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불확실성에 가까운 정보가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쉬운 정보일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성립합니다. 즉 사람들마다 불확실성이 다르므로, 사람들마다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는 정보의 종류가 다르고, 이는 사람들이 같은 사건을 보고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갖고, 완전히 반대되는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이유가 됩니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드레스 색깔 논쟁이 있었습니다.

드레스가 파란색-검은색이냐 아니며 흰색-금색이냐 하는 논란이었죠. 평소 약간 누르스름한 인공조명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드레스를 파랑-검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드레스가 인공조명 하에 있다고 가정하며 무의식적으로 노란색을 덜어내고, 더 어두운 파랑-검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연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들은 파란색, 즉 낮시간 하늘의 색깔인 블루 라이트를 덜어냅니다. 그렇게 되면 드레스가 하양-금색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색깔 사이로 보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며, 어느 집단도 모호함을 느끼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반대편 진영을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이 사건은 뇌가 불확실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일이 단순히 드레스의 색깔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정치, 경제적 이슈에서 벌어진다고 해보죠.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개 그룹으로 갈라집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양당제를 채택하는 이유도 여기 있지요.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뉜 사람들은 각각의 불확실성과 각각의 확실성을 갖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반대 진영의 사람들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볼 수 있는 진실을 상대방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실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이유를 찾습니다. 드레스 색깔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를 만들어내며 상대편 사람들을 부도덕하며, 불결하고, 윤리라고는 모르는 대상으로 악마화하게 되죠.
 
누군가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뭘 아는지를 살펴보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이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서 아는 게 중요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 알 수 없고, 대부분의 경우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이해하기 어렵고, 상대방을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세상도 이해할 수가 없죠.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고 가정을 한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확신과 근거가 사라지므로 이 역시 쉽지가 않습니다. 결국 확신과 신념, 회의와 의심, 이 두 가지를 모두 적당히 가져야겠지요. 
 
참고 문헌 :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데이빗 맥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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