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영감은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 기억 | 뮤즈 | 므네모시네 | 페가수스

RayShines 2024. 4.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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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라는 표현이 있지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을 말합니다.

 

 

 

뮤즈들은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입니다.

제우스의 아버지는 잘 알려진 것처럼 크로노스입니다. 크로노스는 누나인 레아와 결혼해서 제우스를 낳습니다. 그리고 제우스는 티탄족 중 한 명이었던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Mnemosyne 와 아흐레 동안 관계를 맺고 아홉 명의 딸을 낳습니다. 각각의 딸들은 예술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은데 이들이 바로 뮤사(Musa), 혹은 뮤즈(Muse)입니다.

 

 

 

뮤즈는 총 아홉 명입니다.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담당하는데 아름다운 음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고, 그리스 최고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오르페우스의 어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클레이오는 역사에 대해서 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클레이오는 나팔과 물시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나팔은 전쟁을 상징하고, 물시계는 과거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에라토는 서정시와 연애시를 담당합니다. 에로스라는 사랑의 신을 다들 아실 겁니다. 에라토는 에로스의 여성형이라고 생각하시면 틀리지 않습니다. 에우테르페는 음악 중에서도 유행가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이름의 뜻은 매우 기뻐하는 여신입니다. 멜포메네는 비극을 담당합니다. 역할에 맞게 슬픈 표정의 가면과 몽둥이를 들고 다닙니다. 탈리아는 웃는 표정의 가면을 가지고 다니며 희극을 담당합니다. 이름은 꽃피우는 신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폴리힘니아는 여러 가지 찬양가를 부르는 신녀라는 뜻입니다. 찬송가가 영어로 hymn 임을 고려하면 그녀의 이름이 아직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테르프시코라는 무용을 담당합니다. 우라니아는 천문학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라노스라는 신이 있지요. 하늘의 신입니다. 그리고 우라니아는 우라노스의 여성형입니다. 

 

이들이 사는 집의 명칭이 무세이온 Mouseion, 영어로는 뮤지움 Museum, 즉 박물관입니다. 무세이온은 헬리콘 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에는 페가수스의 발굽자리로 불리는 히포크레네, 즉 말의 샘이라는 이름의 샘이 있습니다. 신화에서 히포크레네는 영감의 원천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창작의 샘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그리고 영감이 샘솟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왜 그런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페가수스는 날개 달린 말로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을 나는 것,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겠지요. 그래서 페가수스가 상상력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왜 뮤즈들이 하필 므네모시네의 딸들일까요?

우리가 단어의 한 글자를 따서 여러 가지 항목들을 외울 때 그것을 니마닉, mnemonic 라고 합니다. 므네모시네 Mnemosyne 의 이름이 이 단어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그녀가 기억의 여신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그렇다면 왜 뮤즈들은 기억의 여신의 딸들일까요? 우리의 영감은 기억에서 비롯됨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모방해야 하고 모방하려면 기억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인간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모방한다고들 했습니다. 모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억과 기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많은 것들을 가능한 한 자세히 기억해 두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최대한 세세히 기록해두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록들은 또다시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됐습니다. 결국 창조는 기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디지털 디바이스들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예전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완전히 잊고 지냈던 기억이 떠올라 반가울 때도 많으니까요. 디지털은 우리의 불완전한 기억을 보조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디지털 디바이스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들을 선별하는 과정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전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정말 중요한 것들만 필기했습니다. 말하는 속도를 필기 속도가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고 있다가 키워드만 받아 적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랩탑에 타자를 하면서 강의를 듣습니다. 아시겠지만 타자의 속도는 필기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하는 말을 거의 대부분 타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중력을 발휘해 비판적으로 듣고 중요한 것만 적겠다고 생각할 때에 비해 훨씬 해이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타자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연구를 해보면 타자를 한 사람들이 필기한 사람들에 비해서 수업 내용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더 적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깡그리 다 기록할 수는 있으나 기억에 남는 것은 더 적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타자한 것들을 나중에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공부하면 더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공부한다면 말이지요.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은 나에게 영감을 줍니다.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이 내가 갖고 있던 다른 것들과 연결되며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창작에 불을 붙일 때, 그리고 그것이 페가수스가 파낸 자리에서 솟는 샘처럼 샘솟을 때 우리는 뮤즈를 만났다고 느낍니다. 결국 우리도 므네모시네의 후예들이니 가끔은 스마트폰 말고 내 안에 기억을 담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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