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내가 쓴 글과 내가 한 말은 나일까요? | 인간이 가진 의식적인 비판적 사고

RayShines 2024. 5.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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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 가상의 실험을 통해 무한의 시행착오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합니다. 단세포 생물들도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쪽은 피해 갑니다. 한두 번 같은 일을 겪다 보면 그것이 의식적 학습이든, 아니면 세포 이하 수준에서의 학습이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행동을 교정함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등한 생물의 경우 그 대가가 매우 큽니다. 만약 전기충격이 매우 강한 것이어서 개체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면 시행착오는 반복될 수 없고 더 이상의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잡한 생명체가 아닌 경우 시행착오는 그대로 사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해볼까?, 이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가설은 개체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할 수 없고, 가설이 실패하는 순간 개체도 실패합니다.

 

인간과 짚신벌레의 결정적 차이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론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고, 실제로 그 가설을 몸소 실천하지 않더라도 실험해 볼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고 실험이든, 아니면 실험실 내에서의 실험이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시행착오가 발생시킬 수 있는 파괴적 결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수 있었고, 이를 동력으로 인류를 발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의식적으로 의심하고, 그것을 가설로 만들고 검증하려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냥 과거를 답습해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겠지요. 신경과학의 역사에서 유명한 논쟁이 있습니다. 이른바 “Soup vs. Spark”의 논쟁입니다. 인간의 신경세포의 뉴런 사이의 의사소통이 화학적 신호(soup)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전기적 신호(spark)를 통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존 에클스는 뉴런 사이의 신호 전달이 너무나 빠르다는 것을 근거로 시냅스 사이를 연결하는 신호는 전기적 신호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에클스는 거의 20년 간 이 가설을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가설이 얼마든지 비판당하고, 이에 대한 반증이 무수히 나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런 화학적 신호를 옹호하는 쪽이 자신의 가설에 대한 더 강한 비판을 가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가설을 더 구체화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마치 적을 응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이것을 대결로 본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의 가설을 폐기하고 데일과 뢰비가 세운 화학전달 이론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 한 가지가 전적으로 옳다는 그 그룹이 과학적인 대결을 벌일 때 결론은 둘 다 옳다고 나는 경우가 많지요. 이 경우에도 그랬습니다. 전기적 시냅스도 있고, 화학적 시냅스도 있다는 증거 모두가 결국 나왔으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우리 자신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바로 에클스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우리 자신과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글에 누군가가 비판을 가하면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모욕, 나라는 전인격체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가설로부터 독립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인간은 위대한 발전을 이룩해 왔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는 순간, 우리가 글을 쓰는 순간, 그 말과 글은 나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객관적 개체로 존재합니다. 내가 그 글을 썼을 때의 기분, 내가 그 말을 했을 때의 금전적 상황 같은 것으로부터는 완전히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개인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글과 말은 비판과 반증에 열려 있습니다. 그것에 가해지는 어떤 것들도 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떠난 것이니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에클스의 태도를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SNS에 올린 게시물은 마치 나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고, 블로그에 올린 글 하나하나는 내 생각의 본질과도 같은 것처럼 느껴져서 누군가 그것에 비판을 가하면 분노를 느끼고, 또 그와는 정반대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않는 대로 크게 실망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더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누군가는 오프라인에서 만큼이나 온라인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존 에클스의 태도를 한 번 정도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존 에클스처럼 무한대의 비판에 활짝 열려 있는 과학적 가설을 생산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말을 하는 순간, 그리고 글을 쓰는 순간 그것들은 공적인 것이 되며 그때부터는 우리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니까요. 누군가 그것들에 대해서 뭐라고 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그런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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