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확신 편향 hindsight bias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견지명 편향이라고 하기도 하고, 뒷궁리 편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면 과거에 벌어진 일들의 원인을 다 알 것만 같은 착각을 말합니다.
사후 확신 편향에 대한 정의, 혹은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건 이후에 취득한 정보를 사건 당시에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사건 당시의 과대평가하는 현상으로 보기도 하며, 현대 지식에 과거를 끼워 맞추기 위해 재구성하는 시간 역전 확증 편향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합니다. 보다 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사건의 발생 확률에 대한 사전 예측과 사후 예측이 불일치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10% 정도로 평가하다가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는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100%에 가깝게 높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후 확신 편향을 “나는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 효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후 확신 편향은 매우 흔하게 나타납니다.
거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주식 시장, 그리고 더 복잡하다고 알려진 금리나 환율 시장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사실 주가나 달러값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식 시장이나 환율 시장은 2단계 카오스, 즉 Level 2 Chaos 입니다. 레벨 2 카오스란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를 말합니다. 우리가 날씨를 예측한다고 해서 날씨를 결정하는 무수한 변수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우리가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고 해서 해수 온도나 풍향이 바뀌진 않으니까요. 이처럼 자신에 대한 예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카오스를 레벨 1 카오스라고 합니다. 반면 레벨 2 카오스는 카오스를 형성하는 변수들이 카오스에 대한 예측에 반응을 합니다. 만약 어떤 종목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라면 그 종목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종목을 팔지 않을 것이고 가격은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럼 예측은 빗나갑니다. 결국 예측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고 그렇게 카오스는 유지됩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주식 시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치들에 대한 사후 설명은 너무나도 잘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소재를 소화하면서 주가가 올랐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어 있기 때문에 주가가 올랐다, 전쟁에 대한 리스크는 이미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가가 올랐다 등등의 설명을 하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주가의 움직임을 예상하는 것보다 주가의 변화가 결정된 이후에 그것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훨씬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알면 그것을 야기한 것처럼 보이는 원인은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할 타자가 타석에서 안타를 칠 확률은 30%입니다. 못 칠 확률이 훨씬 높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타석에서 안타를 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예상하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안타를 못 친다면 그것에 대한 온갖 설명이 가능합니다. 날씨가 더워서, 징크스 때문에, 이 타자는 원래 특정 구질에 약하기 때문에 등등, 온갖 설명을 하면서 “난 그럴 줄 알았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굳어지면 과거에 대한 설명을 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래도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며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결정되고 나서 보면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우리는 여러 변수나 우리의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거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우리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었어야지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는 뉴스를 보면 저렇게 뻔히 보이는 일에 실수를 하느냐고 비난합니다. 국가대표들이 축구나 야구를 할 때도 우리는 쉽게 같은 비판을 합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내리면 안 됐다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결과가 결정된 상황에서는 누구나 전문가이고, 국가대표인 법이지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우리가 희생양을 찾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예측했어야지”,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을 했어야지”, “나라면 저렇게 안 했어”라고 말하면서 사건 발생 당시 당사자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사후에는 제3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인과관계의 선을 근거로 당사자들을 비난합니다.
더 나쁜 것은 사후 확신 편향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나쁜 일에 항상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하진 않습니다. 그저 불운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세상에는 매우 많습니다. 누군가 악의를 갖고,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불행을 야기했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불운한 일이 벌어졌고 당사자는 그 불운의 틈바구니 속에 놓여진 것뿐이라면 누군가에게 불운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는 적극적 가해자가 아니라 무작위적 사건과 불운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데 말입니다.
참고 문헌 : 믿음의 탄생(마이클 셔머), 행운에 속지 마라(나심 탈렙), 운이란 무엇인가(스티븐 D. 헤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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