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특권층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요? | 불평등 | 양극화

RayShines 2024. 5.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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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다른 이들에 비해 뭔가를 쉽게 얻을 때 특권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사회적, 경제적인 양극화가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치솟는 부동산의 가격, 중위소득이나 평균소득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위 10%와 하위 10%의 연봉 차이, 부모와 조부모의 세대에 결정된 경제적 순위의 고착화 등은 우리가 원하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수저를 넘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는 특권층이라고 부릅니다. 이 특권층이라는 말에는 비난이 섞여 있습니다. 남들은 피나는 노력을 해도 취득하기 어려운 것들을 큰 노력 없이 얻는 것 자체가 이 우리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사회의 제도들은 그런 특권을 최대한 제거하려는 쪽으로 설정됩니다.

 

 

 

우리는 마이클 조던이나 이정후 선수를 특권층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이클 조던 같은 농구선수나 이정후 같은 야구 선수를 보면서 우리는 특권층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성공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기준 이상의 노력을 했다고 보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그들이 특권을 누린다고 보기보다는 그들의 성공이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이 가진 신체적 조건, 정신적 조건, 타고난 엄청난 재능은 분명히 생물학적으로는 특권에 가깝습니다. 또한 농구라는 스포츠가 존재하고, 또 그것이 프로 스포츠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 태어난 것은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분명 그는 운이 좋았습니다. 이종범이라는 걸출한 야구 선수를 아버지로 둔 이정후 선수 역시 좋은 재능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높습니다. 이 역시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두 사람이 특권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과 좋은 신체조건과 운동신경을 갖고 태어난 것은 둘 다 어떤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 무작위, 혹은 운에 가까운 일인데 전자에 대해서는 비난을 쏟아내고 후자에 대해서는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전자에 속한 이들이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기 어려워 하지만, 후자에 속한 이들이 수천억 원을 버는 것에 대해서는 부러워하는 것 역시 어찌 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결국 특권이라는 말, 그리고 그 특권을 누리는 특권층이라는 말은 우리의 생각보다 선택적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부모의 돈과 지위를 물려받는 것은 불평등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이 누리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신체적 조건이나 재능을 물려받는 것은 발생할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이 여기에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노력을 첨가하기만 하면 그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권은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한 수준이 이상의 의식주를 갖추고, 행복을 추구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가혹한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평등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런 권리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위라고 생각하지요. 이 논리라면 돈을 많이 물려받은 사람, 혹은 물려받은 재능을 가지고 많은 돈을 번 사람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천부인권에 가까운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들이 무엇인가를 누리고 있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닌 반면, 사회의 누군가가 그런 권리를 누리고 있지 못한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즉 누군가 특권을 누리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그룹을 특권층이라고 무조건 비난하기에 앞에 특권층에 속하는 행운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고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특권층의 특권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특권을 누리고 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권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게 먼저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참으로 말장난 같은 말이고,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전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좋은 게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정 그룹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 역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비난으로 해결되는 것은 많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참고 문헌 : 운이란 무엇인가(스티븐 D. 헤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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