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는 우리 생각만큼 강력하지 않으며, 생각보다 쉽사리 고갈되는 자원이며, 그다지 빨리 재충전되지도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정신일도 하사불성”,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등등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들의 특징은 인간이 가진 의지의 힘은 무한한 것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아디다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죠, Impossible is nothing 이라고 하면서요.
우리는 내일부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말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말을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해서 크게 의심해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지금의 삶이 아무리 방만하고 무질서하고 나태하더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내일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강철 같은 의지가 자신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개과천선, 환골탈태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의지의 힘은 너무나 강력한 것인데, 난 지금까지 그것을 쓰지 않았을 뿐이고, 이제부터 그 의지의 칼을 칼집에서 꺼내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우리의 의지가 72시간도 채 지속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지요.
우리는 정신적 역량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한계는 비교적 잘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육체가 가진 장단점에 대해서는 비교적 파악하기가 쉬운 면도 있고, 육체는 타인과의 비교가 매우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신체적 수행 능력은 매우 수치화하기 용이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장을 고려하면 농구선수나 배구선수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며, 자신의 근력을 생각하면 파워리프터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도 수용하며, 100m 달리기에 20초가량이 걸리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거리 육상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속담과 격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들은 우리의 정신적 한계에 대해서는 쉽게 인정하기 어려워합니다. 정신적인 역량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여러 가지 수치들이 나온다고 해도 매우 한정적인 부문에 대한 평가만 가능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며, 실제로 제도권에서 사용되는 검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들이 파격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설령 우리가 가진 물리적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운동을 해서 몸을 변화시킨다거나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상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적 역량이 솟는 샘은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고, 또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그 샘이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런 변화가 그 어떤 준비도 없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육체적 역량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역량 역시 단기적 한계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우리가 갖고 태어난 것을 전혀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의지라는 것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장기간 유지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 그리고 한 번 그런 식으로 의지라는 자원을 고갈시키고 나면 다시 채워 넣는 데도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한 번 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같은 것을 매일, 매주, 매월, 매년, 그렇게 수십 년 동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뭔가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아주 열심히 한 뒤, 바로 그 다음날 어제와 같은 의지가 샘솟지 않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다음 날이 되면 의지는 더 옅어집니다. 우리 생각처럼 쉽사리 채워지지 않지요. 이것이 바로 처음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였던 일을 10일, 100일, 1000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의지의 탱크는 쉽게 고갈되고, 어렵게 채워지며, 단기간에 용량이 늘어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마음만 달리 먹으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가요. 세상 그 모든 사람들이 저 말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매우 큰 간격이 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와 실제로 조절할 수 있는 정도 사이에는 더 큰 간극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지자는 뜻은 아닙니다. 무분별하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해로울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외연을 넓힐 수 있으며 그렇게 한 인간은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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