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꿈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경주라기보다는 여정이 아닐까요.
조금 각박하게 보자면 인생은 자원을 두고 다투는 일종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세상은 그런 컨테스트가 벌어지는 무대입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매우 편협하고 건조한 시간임에는 분명합니다. 세상이 아름답기만 한 곳인지에 대한 회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니까요. 세상은 험하고 무서운 곳이기도 하고 세상 자체가 마치 유기체처럼 우리에게 사납게 덤벼 들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따스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으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단순히 각축전이 벌어지는 전장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기 위해서 자원과 도구들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남들보다 더 가볍고 푹신한 신발을 신고 갈 수도 있고, 남들보다 더 튼튼한 다리와 심장을 갖고 태어났을 수도 있으며, 내 짐을 덜어줄 든든한 조력자를 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어서 걷고 있던 길을 아스팔트로 포장해버리기도 합니다. 세상은 그다지 공정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사는 우리는 어떤 때는 그다지 평등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의 앞에서 날듯이 뛰고 있는 사람을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나의 뒤에서 간신히 한 발짝을 옮기고 있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면서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아무튼 모두 길을 걷고 있기는 하지만 저마다 다른 길을, 다른 장비를 갖추고, 다른 속도로 갑니다.
우리는 사실 뒤를 잘 돌아보지 않습니다. 늘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이 메고 있는 가방, 신고 있는 신발, 입은 옷 등을 보면서 나도 더 빨리 열심히 걸으면 그 사람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더 채찍질하며 다그치기도 하지요. 앞사람은 내가 갖지 못한 그 무엇인가를 갖고 있고,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목표이자 꿈이 됩니다. 저것만 취득하면 나도 행복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같은 생각을 내 바로 뒤에서 날 따라오는 사람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무겁고 딱딱한 내 신발을, 볕을 막아주기는 하지만 조금 더 멋있었으면 좋겠는 내 모자를, 그런대로 따뜻하기도 시원하기는 하지만 땀이 날 때도 몸에 엉기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내 옷을, 내 뒷사람은 꿈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제일 앞에 있는 사람부터 제일 마지막에 있는 사람까지 앞사람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인생이 여정이라고 한다면 그 여정을 빨리 끝내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만 하면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한 줄로 선 사람들에게 번호를 매기는 것이 과연 여행을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그리고 빨리 가는 것에만 집착하며 좌우에 펼쳐지는 풍경을 볼 새도 없이 앞사람이 가진 것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을 과연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당연하게 여기면서 누리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누군가에게는 바라마지 않는 꿈일 수도 있습니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는 경주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는 속도에만 집착하며 어떻게든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것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누구가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며,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각자의 풍경을 보면서 걸어간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다양한 여정의 경로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두터운 옷이 필요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얇고 시원한 옷이 필요할 것인데, 우리는 더운 길을 가면서도 앞사람이 파카를 입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나도 파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사실 나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나에게 필요 없는 그 무엇인가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들도 원하니 나도 원한다가 아니라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여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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