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샤머니즘, 무속, 기복신앙, 미신 등을 이해하는 방식의 시대적 차이

RayShines 2024. 6.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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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 대한 일반적인 인구의 생각과 시각은 세월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뇌나 병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에는 병의 증상들을 무속적인 요소로 수용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거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을 보는 사람들을 병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런 것들을 증상으로 보며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떤 정신병들은 10대 중후반에 발병하는 경향성이 높다는 것과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감을 겪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과거 병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에는 병적인 모습까지도 성장이나 발달의 한 과정으로,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로에서 크게 벗어난 일탈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환각 같은 병적 증상들을 병적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것들을 샤머니즘적인 것으로 해석해서 사회 내부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누이트 족의 한 샤먼은 소년 시절 기이하고 낯선 존재들이 말을 거는 꿈을 많이 꿨다고 합니다. 어쩌면 깨어 있는 동안에도 이런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부족들은 한 샤먼을 불렀고, 그 샤먼은 어린 그를 외진 곳으로 데려가 매우 책상다리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이글루를 만들어주고 금식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그 소년은 하루 종일 정령에 대해서 생각했고 30일의 금식이 끝날 무렵에는 그의 머리 위에 떠다니는 정령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역시 샤먼이 됐다고 하네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이런 모습을 원시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비문명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환각이나 망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대해서 정신병, 혹은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약물을 처방해서 증상을 경감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 치료를 위해 극단적 형태의 격리나 금식 등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가혹행위인 동시에 반인권적인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과거 정신분열증, 조현병이라는 용어도 없고,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도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도 분명 그런 병은 있었을 것입니다. 지식이 없을 때 인간이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을 신비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신비는 우리의 이해 너머에 있는 것이므로 그때부터는 이해가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무엇인가를 거슬러서 그렇다는 샤먼의 해석으로 모든 문제가 일단락될 것입니다. A가 일어난 뒤 B가 일어났을 때 둘 사이에 단순히 전후관계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인관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합니다. 인과가 있어야만 원인을 통제해서 결과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샤머니즘적 영역에서는 전후 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합니다. 모든 것은 인과율에 따르며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불행이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에 있던 나무를 베어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결정론적이고 인과율적 사고방식이 극단화된 것이 미신이나 무속이라는 형태로 현대화된 것일지도 모르지요.

 

인간은 패턴을 찾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졌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겠지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두 사건이 선후 관계를 두고 벌어졌을 때, 그리고 그런 것이 몇 번만 반복되고 나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패턴으로 수용합니다. 그리고 곧 선후 관계는 인과 관계가 됩니다. 무작위로 배열된 별의 나열을 패턴화 하고 그것에 신화라는 내러티브를 부여한 뒤 별자리로 이해하고 외우는 것은 인간의 뇌가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패턴을 찾으려고 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인간에게는 위안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살아가기 너무 두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두컴컴하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길을 지나갈 때 주머니 속에 어머니가 넣어준 부적을 손으로 만지면서 힘을 얻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게 말이 되느냐, 아무 짝에 소용없는 짓”이라고 하는 게 과연 그 어둠 속을 걷는 이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아마 샤머니즘, 미신, 무속, 기복신앙도 우리 삶의 한 요소일 것입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도저히 자신의 인지적 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발생하거나,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그것으로부터 삶을 방해받는 일을 지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어딘가에, 그것이 설령 과학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기대 볼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다만 매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이라면 비교적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럴 때는 누구 한 사람의 의견보다는 통계나 증거가 더 중요할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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