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책을 코덱스 Codex 라고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글은 지금처럼 띄어쓰기가 된 형태의 글이 아니라 모든 문자들이 붙어 있는 형태였는데 이를 스크립투라 콘티누아 Scriptura continua 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책은 앞뒤 표지 사이에 페이지를 끼워넣은 형태의 책입니다. 이렇게 생긴 형태의 책을 코덱스 Codex 라고 부르는데, 코덱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4세기 정도였다고 합니다.
코덱스가 사용되기 전 선호되던 책의 형태는 두루마리 형태였습니다. 막대기에 접착제로 붙인 파피루스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둘둘 만 형태의 책은 보관하는 데 많은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 휴대도 비교적 간편했으며 내구성도 높았기 때문에 당시 초강대국인 로마제국의 엘리트들은 코덱스에 비해 두루마리를 압도적으로 선호했습니다.
이때는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책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사를 해야했을 것입니다. 두루마리 형태의 책은 한 명이 한 번에 한 권의 책 밖에 필사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루마리의 길이를 무한정 늘리면 너무 두꺼워졌을 것이기 때문에 두루마리 책이 갖는 휴대성이나 내구성이라는 장점이 사라졌을테니 말입니다.
코덱스의 경우 페이지에 번호를 잘 매기면 여러 필경사가 한 권의 책을 동시에 작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예를 들어 한 필경사가 특정한 부분만 필사한다면 그 속도와 효율성이 더 증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니 훨씬 더 필사 작업에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4세기 경 로마 시대의 엘리트들은 코덱스를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코덱스를 사용했을까요. 코덱스를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진 집단 중 하나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위에 말했던 것처럼 여러 명이 한 권의 책을 작업하기 용이하다는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시 세련된 작품은 두루마리에, 주석이나 초고 작업 등에는 코덱스가 이용됐었기 때문에 여러 말씀을 모은 초안이나 주석이 많이 달린 성경을 제작하는 데는 코덱스가 더 적합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매우 방대한 텍스트입니다. 방대한 텍스트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두루마리보다 책보다 한 권의 두꺼운 코덱스가 훨씬 더 적당하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결과 고대 후기와 중세에 성경은 일반적으로 여러 권의 코덱스로 구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책과 현재의 책이 보이는 또 다른 큰 특징은 바로 띄어쓰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말에는 띄어씌기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말을 그대로 책으로 옮긴다면 당연히 “띄어쓰기없이이와같이쓰여지게될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전의 책들은 띄어쓰기 없이 그냥 연속된 문자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스크립투라 콘티누아 scriptura continua 라고 부릅니다.
500년 경 활동한 폼페이우스라는 학자는 스크립투라 콘티누아가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보면 “CONSPICITVRSVS”이라는 문구가 나오는에, 이를 “CONSPICIT VRSVS”라고 읽으면 “곰이 주의를 기울였다”는 뜻이 되고, “CONSPICITVR SVS”라고 읽으면 “암퇘지가 발견됐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말에도 전국민이 아는 예가 있지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로마인들은 이미 1세기 경에 띄어쓰기 도입하려고 하다가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7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음독, 그것도 매우 큰 소리를 책을 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생각을 해보면 띄어쓰기가 없는 글을 묵독, 그러니까 눈으로만 읽는다고 해보죠. 아마 이해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한 단어가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를 해독하는 데 매우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했을 것이고 읽기는 퍼즐에 가까운 활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독을 하면 묵독에 비해 더 자연스럽게 어조가 생기고 쉬었다가 읽을 곳과 띄어읽기를 하는 부분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음독이 글을 해독하고 해석하는 데 필수적인 활동이었습니다.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 즉 대략 300~900년 사이에 유럽에는 수도자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들이 하는 활동은 대략 세 가지였습니다. 육체노동, 기도, 그리고 독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갖고 있는 책들은 전부 스크립투라 콘티누아였겠죠. 이들은 이 책을 읽을 때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음독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 이들은 음독을 했습니다. 바로 잡념을 떨쳐내고 더 잘 집중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다가 8세기 초에 아일랜드 수도승들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공간을 추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경향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3세기 이후에는 스크립투라 콘티누아가 완전히 사라지며 현재 형태의 글이 일반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요? 띄어쓰기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서 필사는 필경사라는 프로페셔널들이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쓰는 사람들도 생겨났겠지요. 띄어쓰기가 없던 시절에는 자신이 쓸 글을 1년 뒤에 봤을 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했겠으나 이제는 그런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었고, 개인 작가들도 자신의 글을 퇴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키보드 제작사, 기종을 불문하고 가장 큰 키가 스페이스바입니다. 이는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해주는 것이겠지요.
참고 문헌 : 집중력 설계자(제이미 크라이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인터넷 때문에(그레쳔 맥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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