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리치 감독의 “커버넌트”를 보고 쓰는 감상기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아래 링크는 IMDB의 “The Covenant”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s://www.imdb.com/title/tt4873118/?ref_=fn_al_tt_1
가이 리치 감독은 유명한 영화가 참 많죠. 대표작이라면 아무래도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가 아닐까 싶고, “셜록 홈즈”와 “알라딘”으로도 유명하죠.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캐시 트럭”, “더 젠틀멘” 등이 있습니다. 가이 리치 감독의 초기작들은 독특한 리듬을 가졌던 것 같고 특히 초기의 두 작품인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는 기묘한 템포에 계속 관객을 허를 찌르는 스토리 때문에 신선하다는 평가도 받고, 저도 정말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커버넌트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가 꽤 많습니다. “에일리언 : 더 커버넌트”도 있고, 윈터솔저로 유명한 세바스챤 스탠이 나오는 “더 커버넌트”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의 제목은 “가이 리치의 더 커버넌트(Guy Ritchie's The Covenant)”입니다.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통역사라는 뜻의 “The Interpreter”였다고 하네요. 영화의 내용을 생각하면 왜 그 제목으로 정하려고 했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Covenant는 “계약, 약속, 서약, 맹서”라는 뜻입니다. 영화는 두 남자 사이의 약속과 헌신에 관한 것입니다.
주인공인 존 킨리는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합니다. 킨리는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으로 탈레반의 IED(Improvised Exposive Device), 즉 사제폭발물과 무기를 찾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아메드는 달 살림이 연기합니다. 아메드는 아프가니스탄인이 동시에 4개 국어를 하는 통역사입니다. 그는 미군의 통역사로 일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정비공(“Mechanic”)이었다고 말합니다. 다부진 체격에 강한 인상을 가진 그는 유능하지만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서 ‘다루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어떤 소대에서는 그와 일하기를 거부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들이 탈레반에게 죽음을 당하자 미군을 돕는 일을 하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작전 중 아메드는 킨리의 말을 듣지 않기도 하고, 다른 정보원의 말을 의심하며 작전 경로를 바꾸자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킨리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고 “다시는 내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Don’t ever override my authority.)”고 하기도 하죠. 하지만 아메드의 수완으로 IED와 총기류가 쌓여 있는 기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전 중 킨리의 소대원들이 전원 사망하고 킨리와 아메드만 살아남게 됩니다. 탈레반들은 이 둘을 뒤쫓고 결국 킨리를 다리와 팔에 총상을 입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아메드는 그를 데리고 100Km가 넘게 떨어진 미군기지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 둘을 잡겠다고 탈리반이 혈안이 되어 있어 평탄을 길로는 갈 수 없고 산길로만 가야 합니다. 아메드는 들것을 만들어 킨리를 싣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습니다. 중간에 현지인들과 거래를 해서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차를 수레와 바꿉니다. 그리고 돌산의 오르막길로 킨리를 태운 수레를 밀어 올립니다. 아메드는 강철같이 보이는 남자입니다. 탄탄한 체격에 검은 피부 탓인지 거친 수염이 잘 어울리고, 총이든 칼이든 탈레반을 죽이고 나서도 전혀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킨리를 실은 수레의 바퀴가 걸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먼 산을 보며 아이처럼 목놓아 웁니다. 이 장면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나는데요. 그에게 킨리가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자 돈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아프가니스탄 통역사들은 탈리반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살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군들은 그들에게 비자를 줘서 미국으로 송환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협조를 구했던 것이고, 아마 아들이 탈레반에게 살해당한 그는 곧 태어날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그 멀고 험난한 길을 걷는 1차적 이유는 물론 돈과 비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결연한 표정과 강력한 목표 의식은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고, 아마도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그냥 킨리를 두고 갔다면 킨리는 분명히 죽었을 것이니까요.
결국 아메드와 킨리는 미군에게 발견되고 킨리를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아메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는 탈레반의 현상금 순위 10위 안에 드는 주요 인물이 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사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킨리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한 아메드를 미국으로 데려오겠다고 마음먹고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갑니다.
킨리와 아메드는 그들을 데리러 오기로 한 용병들을 만나기로 한 댐에서 탈레반과 대치합니다. 그리고 둘 다 총알이 떨어집니다. 그때 망연자실하고 있던 킨리를 옆에 있는 아메드를 바라보는데, 슬라이드가 뒤로 밀린 권총을 들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둘 다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역시 마지막 순간 그 둘을 구하려는 병력들이 현장으로 와 탈레반을 소탕합니다.
커버넌트는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통역사들 사이의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고 하고요. 영화의 마지막에 "Covenant / 'Kavenent / A Bond. A Pledge. A Commitment.”라는 자막이 올라갑니다. 맹약, 서약, 헌신이라는 의미겠지요.
사실 아메드가 킨리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과정은 그다지 설득력이 높진 않습니다. 그에게는 곧 태어날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있었고 그가 설명 킨리를 구해낸다고 하더라도 미국으로 가기 전에 탈레반에게 살해당할 가능성도 매우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는 킨리를 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우린 집으로 갑니다, 먼 길이 될 겁니다(We’re going home. It’s gonna be a long journey.)’라고 건조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그가 어떤 남자인지 말해주는 장면 같습니다. 아마 입 밖으로 약속을 내뱉었으니 지킨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자신을 구한 아메드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자신은 편한 침대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에 너무나도 큰 죄책감을 느낀 킨리 역시 “난 안식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I am a man who gets no rest.)”고 말하며 그에게 피난처 - 영화 속 표현으로는 sanctuary - 를 제공하기로 했던 게 당초 약속(deal)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둘은 서로에게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지킵니다. 무엇인가를 지기키 위해 싸우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남자가 신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스토리가 좀 과해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켠을 뜨겁게 하기도 합니다.
나쁘지 않으니 시간이 날 때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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