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것이 남들의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것이 더 좋다고 하면 내 것이 더 좋다면서 다투게 됩니다. 자신의 선택이 최고였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 지원적 편향(choice-supportive bias)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것이 남들 것보다 더 좋다며 논쟁을 벌이는 곳 중 대표 격이 아마 부동산 커뮤니티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정말 애증의 대상이지요, 특히 아파트가 그렇습니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고, 가지기 전까지는 값이 떨어지길 바라고, 일단 갖게 되면 값이 오르길 바라죠. 특히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의 아파트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저기가 뭐가 저렇게 비싸냐고 하지만, 일단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가 가진 아파트를 폄하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는 우리의 가치가 많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집처럼 가격이 비싼 것에 대해서는 더 그렇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녹아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편의시설이 조금 적더라도 조용한 게 좋은지, 아니면 조금 시끌벅적하더라도 편의시설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지, 녹지를 좋아하는지 백화점을 좋아하는지, 아이가 있어서 학교가 가까워야 하는지 아니면 아직은 아이가 없어서 나의 직장이 가까워야 하는지 등등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와 부합되는 가치를 갖고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자산을 살 때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오랜 고민을 거쳐 내린 나의 선택이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러 가지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선택한 나의 결정을 보호하고 싶은 심리가 생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당시로서는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믿게 됩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을 선택 지원적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를 살 때 사람들은 비슷한 가격대의 여러 아파트를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파트는 부동산이고 호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자산인 것치고는 그 가격이 매우 촘촘하게 매겨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표준화된 가격을 가진 공산품처럼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손에 들고 있는 돈이 비슷한 사람들은 당연히 비슷한 가격대의 아파트를 쳐다보게 되어 있고, 그중 대부분을 포기하고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그때부터 포기한 모든 아파트가 내가 선택한 아파트보다 좋은 평가를 받아서는 곤란해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이 어리석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도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지금 나의 아파트를 택했다는 뜻이니까요. 이 상황은 참 견디기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내가 평생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대출까지 모두 끌어내어 산 것이니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게다가 나에게 다른 아파트가 또 있다면 모를까, 오직 그것 하나뿐이라면 더 그렇겠지요.
그래서 부동산 커뮤니티는 선택 지원 편향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입니다. “OO vs. OO”라는 제목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이른바 급지 차이가 크게 나는 곳은 vs.라는 제목이 붙지 않지요. 비슷한 급지, 쉽게 말해 티어가 비슷해 보이는 곳, 그래서 전자를 택한 사람은 후자를 후보군에 두고 있었고, 후자를 택한 사람은 전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런 두 곳이나 그런 두 단지가 vs.로 묶입니다. 그리고는 서로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논쟁을 벌입니다. 어디가 더 좋다, 어디는 뭐가 문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건설적인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선택 지원 편향이 극단으로 치닫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난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서 지금의 그곳을 골랐을 것이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적어서 다른 곳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선택에 대해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좋다고 말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했던 부분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에 높은 가치를 두느냐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들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들진 않습니다. 만약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장에서 매우 낮은 값어치가 매겨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고를 아파트의 티어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죠. 아마도 티어가 낮아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난 절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나에게도 중요했었기 때문에 지금의 것을 골랐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과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며 자산의 가격을 상승시켰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아마도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리가 작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둘은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 장점을 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 혹은 구매력이 비슷했을 것이기 때문에 비슷한 가격의 비슷한 티어가 됐을 것입니다. 만약 그 가치가 압도적으로 좋은 것이었다면 지금 가격에 머무를 리 없겠죠, 아마 나보다 더 큰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테니까요.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선택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자존감과 정합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평가에 따른 것이지, 상대평가에 따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가치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니 그런 문제로 너무 크게 싸울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평소에 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쓰리 빌보드 후기 |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 프랜시스 맥도먼드 | 샘 록웰 | 우디 해럴슨 (314) | 2024.08.24 |
---|---|
영화 추락의 해부 감상기 | Anatomy of a Fall | 후기 (302) | 2024.08.20 |
가이리치의 커버넌트 감상기 | 후기 | Guy Ritchie's The Covenant | 제이크 질렌할 (334) | 2024.08.13 |
SNS는 내가 유의미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276) | 2024.08.01 |
사운드 오브 프리덤 Sound of Freedom | 감상기 | 후기 | 소아성애 | 인신매매 | 짐 카비젤 (349) | 2024.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