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내 비밀을 말하는 게 상대방에게 판단을 강요하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RayShines 2024. 9.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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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무거운 판단을 요구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거나, 가까운 사이에는 비밀이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숨기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진실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뒤에는 “니가 아무리 안 좋은 모습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난 널 아끼고 사랑했을 텐데 넌 혹시 내가 그러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야? 넌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거야?”라는 심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막상 나의 치부를 누군가에겐가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알고도 나를 예전 그대로 봐줄까 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그르치느니 서로 몰라도 될 것은 몰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적당한 비밀이라면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비밀이 없는 것이 가장 순수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비밀은 다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고 서로 사랑하고 가까운 사이라면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비밀을 가지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 두 사람이 가깝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서로 조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하니까요.

 

 

 

또한 비밀의 속성 상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면 그것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만의 비밀이던 순간에는 나 혼자만 괴로워하면 됩니다. 그것이 수치심일 수도 있고, 죄책감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일 수도 있습니다. 나 혼자 그것을 담고 있을 때는 나 혼자만 그것을 감당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두 사람의 문제가 됩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오래도록 고민해 왔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을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이제부터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정말 그것이 죄인지, 아니면 잘못인지, 실수인지, 어리석음인지 등등 어떤 층위의 문제인지 자신의 가치관에 비추어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큰 범죄라고 하면 큰 갈등을 하게 되겠죠. 단순한 어리석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성숙을 기다리면 될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은 솔직함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설령 그럴 의사가 없었을지라도 상대방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비밀은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밀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범죄이거나, 누가 봐도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들은 아닙니다.

정말 그런 것을 숨기고 있다면 그 사람의 전인격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내가 그 사람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혹은 내가 속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 분명하니까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은 시시콜콜하지만 조금은 무거운 그런 애매한 영역의 것들을 말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고 서운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해 다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애매한 것들 말입니다. 비밀이라는 폴더에 넣긴 해야 하지만, 반드시 암호를 걸어놔야 하나 싶은 그런 것들, 누군가 알게 되더라도 난 충분히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순 있지만, 내가 먼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를 내며 “나에겐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혹은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비밀과 적절한 은폐가 필요합니다. 솔직한 것도 좋지만 내 모든 것을 다 사방에 보여주었을 때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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