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 무엇이냐, 혹은 실재하는 것이냐에 대해서 철학적, 과학적 논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현재는 과거의 총합일 것이고,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총합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는 현재만이 존재할 뿐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자면 과거든 미래든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결정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매우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거이지요. 그리고 여러 가능성이 있는 현재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과거 역시 여러 개라고 믿는 극단적인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어떤 시점에 현재와 미래가 모두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바꾸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과거에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결정된 미래를 실현시키는 일종의 배우에 더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위의 두 극단적 관점 사이 중 어디엔가 위치하는 정도의 의견을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개인적으로는 현재라는 한 시점을 결정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내린 결정, 내가 타고난 것들, 내가 한 행동 등의 총합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세상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는 내가 기여한 바가 크게 없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내 모습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아마도 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세상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고, 거대한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수가 가지는 힘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이런 외부적 요인들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클지 모릅니다.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정치나 이념 같은 추상적 환경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세상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모습에 나의 과거가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클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납득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재가 과거의 총합이라는 생각에 동의해야, 미래의 내 모습에도 현재의 내가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더 놓은 나를 만들기 위해서 현재에 무던히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선 위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이디어에 동의한다면, 현재는 과거에 의해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현재에서 미래가 비롯되어야 하지요. 다시 말해서 미래는 현재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과거가 결정했듯 말입니다. 만약 지금의 내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과는 완전히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논리로 미래의 내 모습 역시 지금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현재에 무엇인가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과거만 가지고 나를 판단하려고 하느냐, 이제부터가 중요한 것 아니냐, 지금부터 나를 지켜봐 달라고 말이지요. 이런 주장은 위의 논리대로라면 말이 안 됩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무관하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 아마도 달라진 내가 - 결정할 테니 그것을 믿어달라는 말입니다. 이 명제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지요.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역행 불가능한 일방통행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우화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무관하다는 항변은 미래의 나 역시 현재의 나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역설에 동의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우리는 과거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과거를 부정하는 것, 혹은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미래의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결국 난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과도 동일한 것이 되는 것이고요.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미래의 나도 현재의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나는 부정하는 동시에 미래의 나는 주장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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