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

RayShines 2024. 9.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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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요.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또 우리는 개과천선이라는 말을 믿기도 하고, 나비효과나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어떤 사소한 계기로 어떤 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분기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결과를 짐작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그런 가정 자체가 공허한 것이기도 하지요. 결국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고 이것은 우리 삶에 엄격한 일방향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변화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하기도 하지요.

 

다시 원래 논의로 돌아가서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확실하게 그렇다, 아니다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답을 하든 늘 반례를 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 중독자가 명료한 정신을 수십 년 간 유지하는 것을 그 반례로 들 수 있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뒤 종교에 귀의하여 독실한 삶을 사는 이들 역시 그 반대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전과가 수십 개나 되고, 출옥하자마자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예로 들며 그 피해자의 심정을 헤아려봤느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그래서 그 질문 자체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하는 말이 있지요, 케바케, 사바사.

 

 

 

어쩌면 옳은 질문은 만약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 인간이 변화한다면 그 계기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 말의 의미는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인간이 완전히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방법이란 아마 비인도적인 수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한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 왔던 역사는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선생님들이 사람을 만들겠다며 학생들을 몽둥이로 때리는 일이 당연한 일이었고, 부모들도 자녀들을 체벌하는 일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방법이 인권에 위배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맞습니다. 상대방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니까요. 그러나 그것인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폭력적인 방법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만약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되어서 그것을 사회에서 수용한다고 해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회에서 어떤 인간들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고 해보죠. 예를 매우 폭력적인 사람들을 일부러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용인할 수 있을까요? 폭력을 통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고, 우리가 그 결과물을 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쪽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만 쓰일 수 있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론이 틀린 것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이것은 답이 아닙니다.

 

결국 외부 강제에 의해서 인간이 변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옳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며, 반인권적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는 방법 중 남은 것은 내부적 욕구와 동인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외부 아니면 내부일 테니까요. 인간이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면 노력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누구나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물학적 한계와 물리적 한계, 자원의 한계와 환경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내부적 동인이 없다면 변화는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때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moment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나에게 주어진 그때, 내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드는 그때가 되어야 우리는 변화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가 온다고 해도 변화가 보장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만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실제로 조금씩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변화는 식물의 변화 같은 것입니다. 매일 보면 알 수 없지만 1년 뒤에 보면 아주 크게 변해있는 그런 것이지요. 변화는 지난한 것이지만 방향이 맞다면 우리는 크게 변화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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