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생물학적 아버지 | 정서적인 아버지

RayShines 2024. 10.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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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을 보고 든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습니다. 자식은 부모에 의해서 태어납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어떤 자식이 태어날지는 알 수 없고, 자식은 태어날지 말지도 그리고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의지를 갖고 아이를 낳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녀가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자녀들이 자신들의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까지 내 자식이라고 믿고 6년간 키워왔던 자식이 다른 사람의 자식이었다면 어떨까요.

 

영화의 주인공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우 목적지향적이고 자신만만한 성공한 남자입니다. 정확한 모델명은 모르겠으나 렉서스의 기함급 모델을 타는 것 같고 뷰가 정말 좋은 높은 맨션에 살며 깔끔한 수트를 입고 다닙니다. 아이가 6살이 되자마자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그 인터뷰를 위한 학원에 아이를 보낼 정도로 성취가 중요한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경마에 빠진 도박꾼이고 재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새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릅니다. 그는 평범한 아내를 만나서 결혼합니다. 그의 장모조차 "그는 우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 큰 차이가 났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는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고 공격적인 남자이지만 내적으로는 냉담한 아버지와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약한 남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너무 유능한 사람보다는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는 여성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뿐 아닐 그는 지위에 민감해서 누구의 아래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장모에게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상의할 게 있으면 연락을 하라는 호의도 자신이 아래에 있는 것 같다며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지요.

 

반면 주인공의 생물학적 아들을 키우고 있는 쪽의 아버지는 주인공에 비해서는 사회, 경제적 성공을 거둔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늘 약속에 늦고 나서 아내 핑계를 대고, 빨대를 질겅질겅 씹고, 눈앞에 있는 음식을 보면 참지 못하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웁니다. 수염과 머리칼은 늘 덥수룩하고 작은 전파상을 운영하고 있어 돈에 쪼들려서인지 음식을 먹은 영수증을 위자료를 내게 된 병원 앞으로 발행하기도 합니다.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주인공과는 달리 아내에게 구박을 당하는 편이고, 자신의 의견은 없이 아내의 의견을 반복해서 말하며 동의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너무 바빠서 아이와 보낼 시간이 없습니다. 반면 주인공의 바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쪽은 시간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늘 그럴 마음이어서인지 늘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두 가족이 가끔 만나는 키즈카페에서 주인공은 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상대측의 남자는 늘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줍니다. 그가 아이와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않는 주인공을 나무라자 주인공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고, 그는 주인공에게 “아버지의 역할도 나밖에는 할 수 없다”고 하지요.

 

 

 

아버지는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와 조금 다른 지위를 차지합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일 확률은 100%입니다. 거기에는 오류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확률은 100%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전 일부일처제의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누가 아버지인지 말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도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을 일말의 가능성이 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자기가 믿고 있는 아들이 자신의 아들인지 의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역시 그랬었다”는 말을 합니다. 아내의 표현을 빌면 그는 우수한 남자입니다. 자신만큼 우수하지 않고, 승부욕이 강하지도 않은 아들을 보며 그는 늘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그는 그래서 자신에게 순종적인 여성을 선택했을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생물학적 한계로 인한 의심을 완전히 지워내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아내는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의심을 조금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을 탓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첫 아이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과 더 비슷한 아이를 낳을 기회조차도 없었습니다. 주인공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전파상의 주인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남자입니다. 그에게 삶은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그는 아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도 전혀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 남자이고, 그래서인지 설령 지금 아이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 남자인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는 친구들로부터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냐며 의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 아이가 자신의 다른 아이들을 닮지 않았음에 대해서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확실한 자신의 혈육을 키우겠다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교환합니다. 사실 두 아이는 사고로 바뀐 것이 아니라 당시 일하던 간호사가 주인공 부부를 질투한 나머지 의도적으로 한 행동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불행이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는 더욱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위자료를 건넨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따집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 재혼을 했다고 하니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나와 그에게 고개를 들고 맞섭니다. 그가 그 아이에게 “너완 상관없는 일이 아니냐”고 하자 그 아이는 “상관이 있다, 내 엄마의 일이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는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어깨를 두들기고는 돌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양모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친모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나머지 가출을 하기까지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설령 그 어머니가 양모라고 할지라도 남자답게 나서는 그 아이를 보고 뭔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 일만 하는 그를 염려하는 상관에 의해 조금 한가한 연구소로 일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그곳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이 있습니다. 그 숲에서 그는 매미를 발견하고 그 숲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 매미가 여기서 태어난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숲을 돌보는 남자는 “다른 데서 올 수도 있지만, 여기서 태어나서 유충으로 15년 있다가 매미가 된다”고 답하죠. 주인공은 “15년이나” 걸리냐고 되묻고, 그 남자는 “그게 긴가요”라고 답합니다. 매미도 자라나는 데 15년이나 걸리는데 사람은 얼마나 더 걸릴까요.

 

그는 카메라를 좋아합니다. 아주 고급기종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습니다. 건축가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자신이 놓치고 있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자신의 카메라를 다시 살펴보던 그는 자신이 6년 간 키웠던 아이, 지금은 생물학적 부모와 살고 있는 그 아이가 자신의 사진을 여러 장 찍은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 속의 그는 자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뒷모습입니다. 그는 그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뭔가를 깨닫습니다.

 

결국 그는 더 중요한 것은 핏줄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 그리고 함께 쌓아 올린 추억임을 깨닫고 지금 자신이 맡아 키우고 있는 생물학적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진짜 아들이 생물학적 부모와 살고 있는 곳으로 급하게 차를 몰고 갑니다.

 

DNA는 참으로 강력한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늘 50% 정도의 열린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이 채웁니다. 건조한 말로는 환경이지만 따뜻한 말로는 사랑과 추억, 그리고 경험과 기억이 채웁니다. 우리는 그래서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확연히 다른 삶을 사는 쌍둥이들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미 결정된 DNA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DNA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와 삶을 함께 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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