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오래된 이야기에도 의미는 있습니다. | 신화의 가치와 목적

RayShines 2024. 9.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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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읽다 보면 지금의 윤리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신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드라마로 치면 정말 막장 드라마이지요. 성윤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살인이나 절도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신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합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봐도 근친혼이 그 주제이고, 올림푸스의 주요한 신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잡아 먹이도 합니다. 그래서 신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할 수가 없고 각각의 신들이 어떤 추상적 개념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면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나은 것 같습니다.

 

 

 

신화를 읽다 보면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아니 왜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 한정적이었던 시기였다고 한다면 세상에 돌아다니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 중 실제로 문자화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히 신중하게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이야기를 남긴다고 하더라도 사생활에 대한 수기를 쓰기보다는 후세에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신화는 후세에 지식이나 교훈을 전달하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개인이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지금처럼 용이하지 않던 시절에는 한 인간이 추상적 개념을 다루는 것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 사랑과 질투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들, 술이나 금과 같은 물질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변화 등은 그 자체로 다루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의인화해서 다루는 것이 전달하기도 편했을 것이고, 아마도 이해하는 측에서도 그게 나았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질투는 헤라라는 캐릭터로 의인화되고, 술이라는 대상은 디오니소스로 의인화되는 식이었겠지요. 그게 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 같기도 하고요.

 

신화의 대가인 이윤기 씨는 신화를 거대한 우화라고 말했습니다. 우화는 알레고리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신화는 같은 것을 조금 다르게 말함으로써 상태, 상황, 사건에 대한 우회적 설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조금 더 그것을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그것에 대한 더 큰 경외를 느끼게 하기도 하는 동시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계기를 갖게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참으로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아수라장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 같기도 했고요. 그때는 그 깊은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고, 지금도 그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고 재발견되고 사람들에 의해 곱씹어지고 있는 지식들에는 분명히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 볼거리들이 존재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지식들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 테지만, 가끔 고전과 신화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도 분명히 있지요.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가장 좋은 시작점 중 하나는 100년 이상의 세월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견딘 작품을 고르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분명히 100년 이상 읽히면서도 바래지 않는 가치가 숨어 있을 테니까요. 그런 견지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신화에도 분명히 그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는 우리 각 개인의 깊이와 넓이가 매우 크게 작용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신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며,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가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설화의 깊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지혜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다만 요즘 세상에는 너무 피상적으로 모든 이야기와 서사들이 소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가끔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에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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