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 | 후기 | 감상기

RayShines 2024. 10.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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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고 써보는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어느 가족의 원제는 들치기 가족(?) 정도라고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일을 하기는 하지만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족이라고 이름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 구성원들 중 누구도 서로 피가 섞이진 않았습니다. 다들 그저 남이지요. 그런데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 삶의 공유합니다. 묘하게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묘한 긴장도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전남편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 돈을 가족들은 공유하는 것 같고요. 가족 중 남자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지만, 남자 아아와 함께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게 본업입니다. 여자는 규모가 꽤 큰 세탁소에서 일하는 것 같고, 세탁물을 뒤져 나온 물건을 슬쩍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르는 젊은 여자는 성인업소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남자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다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는 여자아이를 한 명 더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렇게 6명이 함께 살게 됩니다.

 

각각의 구성원들은 다들 사연이 있습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각자의 사연이 밝혀집니다. 할머니를 따르는 젊은 여자는 사실 할머니의 전남편의 손녀입니다. 할머니는 지금도 전남편의 아들, 그러니까 함께 사는 그 여성의 부모에게 찾아가 용돈을 받아옵니다. 그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딸이 호주로 유학을 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녀가 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여자는 술집을 운영했던 것 같고, 남자는 그 술집의 손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폭력적인 남편과 살고 있었던 것 같고, 남자와 함께 남편을 죽이고 시체를 유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당방위라는 판결을 받았죠. 그리고 둘은 파칭코 주차장의 차 안에 유기되어 있는 남자아이를 데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죽은 뒤 그들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집안에 묻은 뒤 연금을 계속해서 받습니다.

 

남자아이는 도둑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서서히 품게 되고, 새로 가족이 된 어린 여자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던 중 “여동생에게는 시키지 마라”는 늙은 가게 주인의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그 가게 주인은 그간 남자아이의 도둑질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남자아이는 현재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는 본인의 말로는 “일부러” 잡힙니다. 그 아이가 잡힌 이후 가족들은 남자아이를 두고 도망가려다 잡히게 되고 그러면서 모든 일들이 밝혀집니다.

 

인물들은 저마다 큰 상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친부모에게 “낳지 말았어야 했었다”는 말을 듣고 자란 여자 아이가 모르는 이들에게 곁을 내주는 것을 보고 “저러기 쉽지 않은데”라고 말합니다. 이들 역시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낯선 이들에게 쉽게 다가서는 어린 여자 아이처럼 다른 가족들은 삶을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인생을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면 그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해도 되느냐는 남자아이의 질문에 “글쎄, 가게가 망할 정도가 아니면 되지 않을까”, “진열되어 있는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그냥 삶을 살아나갈 뿐 거창한 계획이나 도덕이나 윤리 같은 대의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세탁소 사장은 인력을 줄여야 말을 듣고 여주인공과 그 동료를 불러 누가 나갈지 결정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여주인공의 친구가 “니가 그 여자 아이와 있는 것을 봤다”며 이를 폭로하지 않을 테니 여주인공더러 나가라고 하지요. 이때 여주인공은 “그렇게 하겠다, 그런데 입 열면 죽여버린다”고 합니다. 실제로 남편을 죽인 여주인공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이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실제 그때 여주인공의 표정 역시 그렇습니다. 그냥 하는 빈 말이 아니지요.

 

영화의 결말에 가족은 결국 해체됩니다. 결속되어 있긴 했으나 이들은 쉽게 와해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였죠. 할머니는 함께 놀러 간 해변가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야기하고 난 뒤 자다가 숨을 거둡니다. 남자아이는 남자 주인공에게 절대 아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을 찾아가 하루 밤을 함께 자며 “그때 정말 나를 버리고 도망가려고 했느냐”고 묻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그렇다고 하며 “이제 난 아빠에서 아저씨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버스를 탈 때 남자 주인공은 “이제 다시는 아저씨와 (보지 말자)”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가 탄 버스를 뛰어서 쫓아가고, 남자아이는 한참이 지난 뒤 뒤를 보고 입모양으로 “아빠”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서로 듣고 싶은 말이 있지만 서로 그 말을 선뜻해주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이 관계가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마음 저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꼭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절망의 순간에도 서로 기댈 수 있는 것이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으니까요. 어느 가족이든 각자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가족이든 사랑과 신뢰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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