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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원 Transformer One | 볼만한 애니메이션 | 감상기 | 후기

RayShines 2024. 10.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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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원>의 감상기입니다. 스포일러가 매우 많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트랜스포머는 제가 알기로는 미국의 완구 회사 하스브로에서 일본 완구 회사 다카라에서 만든 완구의 미국 판권을 사들인 뒤 이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입니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20년 카렐 차펙이 쓴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 R.U.R. Rossum’s Universal Robot>에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봇 robot 의 어원은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체코어 로보타 robota 라고 합니다.

 

서양의 인조인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들에게 거부감과 공포감을 주는 대상이었고, 최근 나오는 AI와 관련된 로봇들에 대한 영화들도 창조된 생명체가 자신을 실제 생명인 줄 착각하는 것에 대한 위화감, 그리고 그들이 창조주인 인간을 파괴하려 시도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로봇들은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기도 하는 친숙한 존재부터 인류 전체에게 위협을 가하는 파괴적 존재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그 이유가 혹시 일본이 다신교 국가이며 수백만의 잡신을 모시는 사회이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나 유기체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매우 발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었고요. 트랜스포머 역시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이고 인간 사회에 무리 없이 녹아드는 오토봇과 인간으로부터 지구를 탈취하려고 하는 디셉티콘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보입니다.

 

트랜스포머 원은 마이클 베이가 시작한 영화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의 프리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서로 대적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나름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센티넬 프라임의 성격이 실사 영화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화 상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은 프라임이 되기 전 캐릭터인 오라이온 팩스로 등장하고, 메가트론 역시 원래 이름인 D-16으로 등장합니다. 참고로 D-16은 다카라에서 16번째로 내놓은 완구이며 당시에는 디셉티콘이 아니라 데스트론 Destron 이라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D-16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라이온 팩스와 D-16은 친구입니다. 위에서 로보타가 강제 노동을 의미한다고 했었죠. 이 둘은 에너존이라는 에너지원을 캐는 광부입니다. 로봇의 어원을 생각하면 이 둘이 노동로봇인 것이 이상하진 않죠. 실사 영화를 보면 옵티머스 프라임은 고지식한 원리원칙주의자인 것처럼 보이고, 메가트론은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짓도 할 것 같은 무정부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 원에서는 둘의 성격이 정반대입니다. 오라이온은 극단적으로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성격이어서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뭔가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D-16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안정 지향적인 로봇입니다.

 

둘은 가슴에 코그 cog 가 없어서 변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라이온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겠다며 변신을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들만 참여하는 아이아콘 5000이라는 레이스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둘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둘은 질서를 어지럽힌 벌로 지하 50층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B-127, 즉 범블비를 만나게 됩니다. 실사 영화에서 범블비는 목소리를 빼앗겨 말을 할 수 없는데 트랜스포머 원에서는 매우 수다스러운 캐릭터로 나옵니다. 셋은 우연히 오래된 홀로그램 저장 장치에서 프라임들이 쿠인테슨들과 싸우다가 전멸하게 된 곳의 좌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지상으로 올라가던 도중 오라이온과 D-16의 상관 광부였던 엘리타에게 발각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 생명이 남아 있는 알파 트라이온에게 센티넬 프라임이 배신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센티넬 프라임이 광부 로봇들이 목숨을 걸도 캐낸 에너존을 쿠인테슨에게 전부 가져다 바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알파 트라이온의 도움을 빌어 코그를 갖게 되고 비로소 트랜스포머가 됩니다.

 

오라이온과 D-16, 엘리타와 B-127이 코그를 가슴에 갖게 되며 한 차례 성장하는 과정은 인간의 사춘기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며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또 삶의 새로운 목적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세상에 대한 적대적 시각을 갖게 되는 사람들도 있지요. D-16이 그렇습니다.

 

실사 영화 상으로 오토봇들의 눈은 푸른빛, 디셉티콘들의 눈은 붉은색을 띱니다. D-16의 눈빛은 원래 약간 옅은 주홍색 같은 색깔이었는데 센티넬이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수많은 광부 로봇들을 착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과 분노를 느끼며 그의 삶의 목적은 센티넬과 믿을 수 없는 족속인 프라임들을 파괴하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많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빌런의 우두머리 중 원래는 선한 편이 있었던 캐릭터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계기로 주어진 역할에 환멸을 느끼며 선역들의 대척점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얼마나 설득력과 개연성을 가지느냐가 작품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기도 합니다. 트랜스포머 원의 D-16이 메가트론이라는 악의 화신으로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은 설득력이 꽤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유치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반면 오라이온 팩스는 자신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이제부터는 반드시 규칙 - 영화의 표현으로는 protocol -  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래는 실사 영화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던 두 캐릭터가 실사 영화의 성격을 갖추게 되어 가는 과정을 트랜스포머 원은 아이들이 봐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비교적 잘 그려낸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가 주는 시각적 쾌감은 뛰어난 편입니다. 요새는 모든 영화와 애니메이션들의 그래픽 퀄리티가 높아서 이 작품이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보고 있으면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로봇들의 눈동자나 입술이 미묘하게 움직이는 것도 부자연스럽지 않고 그들의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로봇이니 어떤 액션씬이 나와도 물리적 한계를 머릿속에서 지운 채로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장점이고요.

 

머리를 비우고 영화 자체의 시간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추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랜스포머의 팬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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