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예상하고 기대를 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예측과 기대가 아니라 대응이겠지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원숭이들에게 뭔가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잘 수행한 원숭이에게는 사과쥬스를 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도파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과제를 잘 수행한 원숭이에게 사과쥬스를 주기 전에 반짝이는 불빛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불빛은 사과쥬스라는 보상과 연합되었고, 이내 원숭이의 뇌는 불빛만 보여줘도 도파민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쥬스가 주어져도 불빛을 봤을 때만큼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과제를 수행한 원숭이들에게 불빛을 보여준 뒤 쥬스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파민을 분비하던 뉴런들의 전위가 기준선 아래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성이 줄어들어버린 것이지요. 이는 도파민이 보상 그 자체뿐만 아니라 기대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도파민을 굳이 쾌락 분자가 아니라 기대감 분자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주식 시장도 그렇습니다. 우량기업의 실적 시즌이 되면 온 시장이 한껏 기대감이 부풉니다. 애널리스트들의 컨센서스에 따라서 주가가 마구 오르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막상 컨센서스랑 거의 비슷한 실적이 나오면 “시장이 실망”했다며 매도 주문이 터져 나옵니다. 이상하지요. 그 정도 나올 것이라고 모두 예상을 해놓고는 실제로 그 정도 실적이 나오니까 실망하는 거니까요. “이번 시험은 90점 정도 받을 거 같아”라고 해놓고 실제로 90점을 받으니 실망한다면 기대가 잘못된 것일까요 반응이 잘못된 것일까요. 다시 말해 우리가 실제로 우리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욕구와 실력을 솔직히 평가했는데 미래에 대한 기대 자체가 마치 우리의 예상이 틀린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둘 중 뭐가 옳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큰 기대 이후 찾아오는 실망이 우리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을 어떻게 하면 줄일까 하는 것입니다.
배탈이나 몸살이 심하게 났을 때 우리는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괜찮겠지”라는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에 깼을 때도 속이 메스껍고 온몸이 쑤시면 우리는 실망을 합니다. 불빛이 반짝거렸으니 곧 달콤한 사과쥬스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달아올랐던 도파민 세포가 쥬스가 주어지지 않자 평소보다도 더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몸이 조금 아픈 것이라면 이내 털어낼 수 있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대한 문제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어떤 경우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큰 낙차는 가끔 우리의 정신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기대와 예견을 하며 살아갑니다.
기대와 예견이 없으면 우리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등한 인기지능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전두엽이라는 최첨단 칩셋이 만들어내는 진화적 마술에 가깝습니다. 이 능력을 잘 활용한 덕분에 인간은, 그리고 인류는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이 관여하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시킨 뒤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능력은 우리 인류가 발전해 온 원동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대와 예견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돌려놓고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앞으로 난 이런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현재 자신의 역량과 욕구를 미래로 투사하는 능력을 통해 개인은 현재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희생하여 원하는 미래를 취득하는 전략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스케일의 인류 전체적 관점에서 발생하는 실망과 개인의 삶에 있어서 발생하는 실망은 크게 다릅니다. 인류에게 실망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 비용은 분산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너무 과도한 자원 투입과 그에 따른 너무 큰 낙차와 실망은 개인의 삶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것, 그리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도 시나리오에 넣어두는 것, 그리고 그런 경우 취할 수 있는 플랜 B를 만들어두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측, 기대, 예견은 하되 실망에 대비해야 하며, 기대가 충족됐을 때의 전략과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대응책을 모두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벌어지는 일은 10%,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90%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인생을 살다 보면 예측조차 하지 못했던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일이 늘 일어난다거나 너무 많이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반드시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절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과도하거나 비현실적인 기대는 조금 접어두고, 실망에 대비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은 늘 비축해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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