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무작위적으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사건들을 하나로 꾀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지요.
세상의 많은 이들은 특별한 목적이 없이 일어납니다. 많은 경우 어떤 사건을 야기한 이유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목적을 갖고 일어나는 경우는 그보다는 훨씬 적을 것입니다.
곡물이 잘 자라고 비가 오고 볕이 쪼이는 것이 아니지요. 뙤약볕과 소나기가 오가며 벼가 익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부자로 주식의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닐 것입니다. 어떤 주식이 오르니 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라는 설명이 더 맞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내가 하는 행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회의론이나 허무론에 빠지는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는 의지와 목적을 갖고 선택과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하는 행동이 세상에 미치는 파급력이 그다지 크지 않을지 모르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작위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들의 벡터값의 총합이 나에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네 인생이 랜던 이벤트에 의해 결정된다거나, 완전한 우연이라거나 하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내가 나의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을 몇 명 꼽으라고 한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세상에 일어났던 무수한 사건들과 그 영향력의 합이 서로 뒤엉키며 지금의 나라는 인간을 주조해 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우리가 된 과정, 그리고 미래의 우리가 현재의 과거로부터 비롯되는 과정이 그저 단순히 하릴없이 일어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나의 삶에 어떤 흐름이 있고, 플롯과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이른바 이야기 편향 narrative bias 입니다. 발생한 사건들에 명확한 인과관계, 목적, 지향이 있다고 믿는 경향, 그리고 나의 삶은 무의미한 무작위 사건의 총합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사건들이 촘촘히, 적절한 때에 적절히 배치됨으로써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이 써 내려간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린 시절에 난 이런 아픔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고 있어, 나의 삶은 아마도 거기서 시작됐을 거야, 상처를 극복하기로 마음먹었던 그때 말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편향이라고는 하나 이것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각자 내 삶이 남들에게는 보잘것없지만 나 자신에게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착각하는 것이 뭐 그렇게 큰 죄가 되겠습니까.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 삶을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고, 또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내 삶의 이야기가 갖는 가치, 내 인생의 서사가 나에게 주는 의미가 자꾸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좁은 물길을 따라 바삐 흐르는 시냇물이든, 너른 땅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커다란 강이든, 어쨌든 우리 각자의 삶은 앞과 뒤가 이어지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며 그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흐르는 삶을 관조하며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설령 그것이 이야기를 만들려는 편향 때문이든, 무작위 사건의 확률을 이해하지 못하는 착각 때문이든지 간에, 가치를 추출해 내는 과정은 거대한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찰나를 포착하는 데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 글의 흐름보다는 거슬리는 단어 하나에 집착하며 분노하고, 편집되어 올라오는 타인의 삶의 단면을 소비하며 내 삶 역시 소모하는 데에만 경도된 듯한 지금 우리들의 삶에서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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