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혼자 살던 시절에 집에 들어가는 철문을 “철컥”하고 닫고 나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느낌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은 저희 가족 중 한 명이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그냥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전 그때 뭔가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고 그날도 평소처럼 그날 공부해야 할 양을 소화하고 있던 중에 그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족이 아프다고 해도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해야 할 것을 하자고 생각하고 할 일을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도서관을 떠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뭔가가 평소와는 달라졌습니다.
언제나처럼 문을 여는데, 그날따라 현관문은 어제보다 더 무겁게만 느껴지고, “철컥”하고 문을 잠갔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던 철컥 소리였는데 왠지 그날은 평소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소리로 들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 밖에 있던 저와 집 안에 있는 저 사이의 무형의 연결을 예리하게 베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둡고 차갑기만 했던 그 작은 집 - 사실 집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냥 작은 방에 가까웠던 - 이 왜 그리도 막막하게 느껴지던지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전 ‘여기서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문을 잠그는 철컥 소리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저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신호음이었고, 그 소리를 기점으로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전혀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참으로 버거웠고, 문을 잠그는 매서운 금속성 소리에도 마음이 베이던 그런 유약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목표는 명확했지만 거기서 살아가는 모든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던 것은 계속하지 않을 수 없던 때였습니다. 거기서 멈추면 그때까지 해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쫓기는 기분이 들었고, 조금만 삐끗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살았던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초조해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경험과 자원은 너무 적고, 감정의 폭과 깊이는 너무 컸습니다. 그런 시기에는 사소한 것도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는 법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고는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나서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까요. 지역을 공유할 뿐 지금의 중년층과 청년층은 같은 인종이라고 보기 어렵죠. 특히 사회, 문화, 기술적 환경이 너무나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이해하기 거의 불가능한 부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적은 제 경험이 그런 부분 중 하나일 겁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다 보면 누구나 한없이 외롭고, 왜 사는지에 대한 목적을 찾을 수 없고, 삶의 의미를 잃은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것 외에는 사는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복수를 위해 칼을 가는 주인공처럼 그것 외에는 아무런 목표도, 의미도 없이 살 수만은 없습니다. 삶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필요합니다. 전 삶의 의미는 다채로울수록, 다층위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역할을 통해서 내 삶에 여러 가지 층위의 의미가 생겨날 수도 있고,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장점이나 재능을 통해서 내 삶이 좀 더 다채로운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뭐 한 가지에만 몰두하거나, 혹은 몰두는 넘어서 그것이 집착이 됐을 때는 그 하나가 흐트러졌을 때 난 너무나 큰 공백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러면 깊은 허무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많은 분들, 집에 들어가는 순간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에 마음을 베이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조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은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인생을 살며 깨닫게 되고, 지금까지 믿고 있는 진리 중 하나는 인생에 있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며, 좋은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나쁜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회피하지 않는다면 내 삶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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