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가 쓴 짤막한 글 중에 “포르노 영화를 식별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에코는 쓸데없이 늘어지는 공백 시간이 많으면 포르노그래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포르노그래피의 유통은 혁신적인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인터넷은 이미지와 동영상을 전달하기에 이상적인 매체니까요. 혹자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에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40%를 포르노그래피가 차지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자극적인 영상이 더 쉽고 빠르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4년에 매일 포르노를 본 남자아이들의 비율은 11%였는데, 2014년에는 24%로 10년 사이 그 비율에 2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포르노를 보는 남자 청소년 중에 59%는 포르노가 항상 자극적이라고 보고했고, 22%는 습관처럼 포르노를 보게 된다고 했으며, 10%는 포르노그래피로 인해 현실 세계의 잠재적 파트너에 대한 성적 관심이 감소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10%는 포르노그래피 시청이 일종의 중독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과도한 포르노그래피 시청이 남자아이들에게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연애에 뛰어드는 대신 단순한 성적 만족을 위한 안락한 선택에 안주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 주장입니다. 갈수록 전송 속도와 영상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문제가 더 심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리라고 봅니다.
포르노그래피의 문제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성을 최대한 피하고, 확실한 만족을 얻는 것에 탐닉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조너선 하이트의 주장은 에코가 “포르노 영화를 식별하는 방법”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일맥 상통합니다.
에코는 “포르노 영화란 시종일관 관객의 욕정을 자극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는 영화”를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태생적으로 포르노그래피는 자극을 목표로 합니다. 일상적인 것이 자극적인 것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므로, 당연히 상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비상식적인 것, 더 나아가 사회적 규범이 관용하기 어려운 불법적인 행위가 표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객들이 이를 어느 정도 수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탈적 행위가 정상적인 배경에서 나타나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판단되는 내용들이 관객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많아야만 한다는 것이 에코의 주장입니다.
저도 이런 에코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면 포르노그래피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나열만이 존재합니다.
거기에는 깊은 서사가 있거나, 인물들 간의 감정이 표현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복잡한 상호 작용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들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 제작자들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며, 다루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관객들을 자극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포르노그래피에는 이렇다 할 서사, 내러티브, 이야기가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틀 중에 한 가지가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러저러해서 이러저러하더니 이러 저렇게 되더라”는 서사 구조를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만들며 없던 인과관계라도 만들어내서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포르노그래피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뭔가 이야기로 엮을만한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저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기차에는 별 다른 핑계가 필요하지 않듯이 그렇게 한 가지만을 위해 극이 진행됩니다. 이는 무조건 이야기를 찾는 우리의 본성에 매우 위배됩니다. 특히 사건을 지나가며 느껴지는 감정을 통해 사건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적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에게 누군가와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정신적 교감과 깊은 감정의 교환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적 가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육체적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매우 큰 비약으로 보이는 동시에, 매우 공허한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에코가 이야기하고, 하이트가 우려했던 것처럼 포르노그래피의 오남용은 남자아이들로 하여금 현실을 피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감정을 통해 행위와 사건에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의 가치 판단 시스템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누군가와의 내밀한 관계는 소중한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는데 이것이 그저 비트 단위의 트래픽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테니까 말입니다.
'조금 깊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세 군데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복 편향, 반복 편견 (338) | 2025.06.30 |
---|---|
우리는 뭔가를 끝맺고 싶어합니다. | 종결 욕구 | 자이가르닉 효과 (260) | 2025.06.28 |
당연해보이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209) | 2025.06.12 |
하이퍼어텐션 Hyperattention 과 딥 어텐션 Deep Attention | 주의 과잉과 깊은 집중 | 몰입 | 캐서린 헤일스 (188) | 2025.05.06 |
ADHD의 시대, ADHD는 정말 병일까요, 아니면 시대 상황의 반영일까요? (260) | 2025.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