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깊은 생각

우리는 세 군데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복 편향, 반복 편견

RayShines 2025. 6.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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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슷한 정보를 세 군데 이상에서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반복 편견, 반복 편향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늘 누군가에 대해서,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뉴스라는 것이 결국은 누가, 뭘 했다더라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그것에 따라서 편을 가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냥 욕을 하는 자리라면 말이죠. 하지만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서 각자가 가진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였고, 신문이나 뉴스, SNS,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이것이 유일하게 평판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뒷담화 없이는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피해야 할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살며, 그 사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우리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상태에서 살아가야만 했고, 배경과 역사를 전혀 알 수 없는 개인과 상호 작용을 시작할 때 스스로를 보고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평판뿐이었을 것입니다. 뒷담화 없이는 그것을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고요. 뒷담화는 나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우리가 정말 피해야 할 악한 사람을 피하게 해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 과거에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인터넷을 타고 흐르며 살포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몇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이것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것이 매우 내밀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많아봐야 5명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근거는 던바의 숫에 있습니다. 로빈 던바는 인간이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그룹부터 가장 소원한 그룹의 숫자를 순서대로 5-15-50-150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5명 정도,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며 청첩장을 보낼 수 있는 정도의 관계는 150명 정도가 한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150명을 넘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관리하려면 너무나 큰 인지적 부하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던바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비밀스럽게 뭔가를 진행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많아봐야 5명 정도와 그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도 하겠죠. 그 숫자를 대략 3명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의견을 물은 3명이 모두 누군가에 대해서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해보죠. 그럼 우리도 그 사람에 대해서 같은 의견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꽤 높을 것입니다. 나와 가장 가깝다는 것은 나와 생각이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과 나의 판단 기준이 비슷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니까요. 따라서 3명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의견은 더 이상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특별히 반복 편견, 혹은 반복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 군데서 같은 정보를 접하면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돌아다닙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이야기의 유통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클릭이나 터치 한 번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하나의 이야기가 무한정 반복 재생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고작 세 군데에서 같은 정보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동시에 수백만 군데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아무리 날조, 허위, 거짓, 페이크라고 하더라도 “이게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이라도 반복해서 계속 들으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너무 의심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만약 모든 정보를 의심한다면 우리 삶의 효율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그렇게는 살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극단적 정보이거나, 내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라면 우리가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회의적 태도를 취해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거짓을 말하기 쉬운 세상이고, 일부러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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