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과거 집단의 생존을 아기와 노인들을 죽이는 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영아 살해 infanticide, 노인 살해 senecide 입니다.
지금도 먹을 것이 부족한 국가들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발전이 된 나라는 음식이 부족한 것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칼로리가 너무 높아서 문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식품 가공 기술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이제는 기아보다 비만이 더 문제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것을 대략 1만 년 전이라고 봅니다. 그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수렵, 채집을 해서 생존을 해야만 했고 이 시기에는 식량이 늘 부족했을 것입니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에도 식량이 남아돌진 않았을 것입니다. 관개 시설이라든지, 기후 예측 등의 기술이 충분치 않았던 시기에는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 어려웠을 것이고, 심하게 가물거나 태풍이 지나간다면 수렵, 채집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요. 비윤리적이고, 야박하긴 하지만 이렇게 한계에 내몰린 집단이라면 노인과 아이들은 대단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집단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어찌 보면 야만적인 방식으로 식량 부족에 대응했다고 합니다. 시쳇말로 입을 줄이는 것이지요. 생산 활동 능력이 저하된 노인과 아직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함으로써 식량 요구 부하를 줄인다는 발상이 지금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결혼과 출산은 매우 신성한 것이며,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전체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는 것 자체의 숭고함이 변질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환경이 너무 척박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낳는 것이 가지는 높은 가치가 희석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는 위기에 쳐해 있습니다. 치솟는 집값, 심해지는 양극화 등의 이유로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출생률을 떨어지고 있습니다. 표현되는 모습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환경이 척박할 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과 낳은 아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은 맥락입니다. 너무 슬픈 일이지요.
어떤 산모들은 아이를 낳은 뒤 산후 우울증에 빠집니다.
그보다 조금 미약한 형태로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병적인 과정일 수도 있지만, 산모가 아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기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심한 산후 우울증에 빠진 산모는 아이를 해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출산 후에 찾아오는 대처 가능한 수준의 우울증은 미래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을 무너뜨리고, 찾아올 날들에 대해서 비관적인, 그래서 어찌 보면 더 현실적인 평가를 하게 해 줍니다. 스스로에게 “과연 내가 이 부담을 지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산후 우울증이 미혼, 별거, 친정 부모와의 소원, 난산을 겪은 경우, 태어난 아기가 아픈 경우, 경제적 능력이 취약한 경우, 남편의 직업이 없는 경우 등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산후에 발생하는 호르몬의 불균형도 그 원인일 수 있으나 사회, 경제적 이유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문제라면 개인에게 강력한 선택 압력이 가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단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의 위기라면 당장 나가서 식량을 구해올 수 있는 인력 외의 인원에 대해서는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아 살해와 노인 살해가 같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인간은 개인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집단을 구성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본말이 전도되며 집단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화됩니다. 애당초 개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탁하지 않았더라면 성립할 수조차 없었을 집단이 개인의 생사를 여탈하고, 구성원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느 것이 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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