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든 생각

최후 통첩 게임 Ultimatum Game | 4:1 | 분노 부당 불공평 | SNS 부정적 비교

RayShines 2023. 4. 1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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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통첩게임 ultimatum game 을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후통첩게임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100달러, 우리는 10만 원이라고 하죠, 를 주고 나눠가지라고 하는 게임입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는 돈을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다만 다만 1원이라도 나머지 사람에게 분배해야 합니다. 혼자 10만 원을 다 갖는 것은 안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은 반대편 사람이 분배한 비율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할 권한이 있습니다. 만약 나머지 사람이 분배 비율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못합니다.

 

 

 

경제학 이론은 모든 참여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가정합니다.

이상적 세상에서라면 다만 1원이라도 공짜로 생기는 돈을 마다할리가 없겠죠. 상대방이 99,999원을 갖고 자신에게는 1원만 배당하더라도 그 딜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입니다. 최소한 1원이라도 이득은 이득이니까요.

 

 

 

그러나 세상은 이론과 다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성적이지고 않고, 그 속에서 사는 우리들도 합리적인 판단만을 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만약 99,999 : 1 의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저라도 그 딜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배가 아프기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만 원씩 나누어 갖자고 한다면 “참 너그러운 친구군” 하면서 기꺼이 그 딜을 받아들일 것 같네요. 만약 상대방이 6만 원, 제가 4만 원이라고 해도 “그래 뭐 이 정도라도 이득이니까”라고 하며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대 몇의 분배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분배 비율이 8:2가 되면 사람들은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8:2부터 사람들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상대방이 7만원을 갖고 나한테만 3만 원을 주는 것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다 상대방이 자신은 8만 원을 차지하고 나에게는 2만 원만 준다고 하면 “아니 이거 너무 불공평하잖아?”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거래가 결렬되고,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못합니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도 공돈 2만 원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많은 8만 원을 공짜로 차지하는 것을 보면서 질투를 느끼느니, 차라리 나의 2만 원도 포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버는 돈이 내가 버는 돈의 4배가 되면, 둘이 하는 일이 비슷하다는 가정 하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서 판 자체를 깨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들은 1원이라도 받고 본다고 합니다. 여기에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지요. 다만 게임이 끝나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인간의 결정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감정이 크게 관여하죠.

최후통첩게임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일단 사람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이 결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무리 나에게 득이 되는 상황이라도 나와 비슷한 조건에 놓은 누군가가 나보다 너무 큰 이득을 취하면 이를 이를 부당하며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분노, 질투, 시기 등의 부정적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규칙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협상을 닫아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규칙을 벗어났다면 상대방에게 크게 화를 낼 수도 있고, 다른 수단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규칙에 따라 분배율을 받아들이지 않는 식으로 자신의 화를 표현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만약 이 비율이 4 대 1을 훨씬 넘어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은 자기 위주로 세상과 상대방을 이해합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상대방을 이해합니다.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매우 비슷하게 겹칩니다. 이것을 바꿔 생각하면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쓰는 네트워크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말이 됩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내가 아는 것은 상대방도 다 안다고 가정을 한다거나, 조금 부정적으로는 내가 아는 것 정도만 상대방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을 평가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거짓합의 false consensus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23.02.20 - 거짓 합의 False Consensus 란? |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 | DMN

 

거짓 합의 False Consensus 란? |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거짓 합의 - false consensus -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이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입각해 추론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견이나 믿음이 타인들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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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가 더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그 집단에서 처리해야 할 일의 몇 %씩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냐는 질문을 한 뒤 총합을 구하면 100%가 넘을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일을 많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거짓합의와 합쳐지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쟤나 나나 능력도 비슷하고, 아는 것도 비슷한데 왜 내가 일을 더 하는 거지?”

 

여기서 두 사람의 월급이 비슷하다면 그럭저럭 조직이 굴러갈테고 대부분의 조직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쪽이 분노를 폭발시킬 정도의 연봉 차이를 설정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 간의 연봉을 알 수 없도록 하는 장치도 가동시킵니다.

 

 

우리는 SNS를 보며 늘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옆 동료와만 자신을 비교하나요? SNS는 거대한 컨테스트의 장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삶 중 좋은 것들을 잘 편집해서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면서 그들의 삶과 자신을 삶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죠. “나나 쟤나 큰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쟤는 매일 저렇게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데 가고, 여행을 다닐 수 있지?” 그리고 부럽기도 하지만, 분노가 치밀기도 합니다. 아마 그 격차가 심리적으로 4~5배가 넘는다고 느껴진다면 정말 판을 뒤엎고 싶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월등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분노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의 리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격차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랑 큰 차이 없다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쉽게 말해 내가 생각하기에 나와 같은 리그에 속해 있고 나와 스탯도 비슷한 누군가가 너무 큰 연봉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땐 시기의 감정이 아닌 분노의 감정을 느낍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SNS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당하다는 생각, 그리고 가능하다면 최후통첩게임의 딜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지금 찍힌 스냅샷만 보고 그것을 나의 인생 전체와 비교하죠. 나는 이렇게 고생 고생해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저런 위치에 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쉽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쉬워 보일 때가 많지요.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고, 혼란스러운 세상의 속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일말의 노력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삶을 각자의 페이스로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페이스는 다른 사람의 페이스일 뿐, 자신의 삶의 방향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자료 : 호모 데우스(유발 하라리),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브루스 후드), 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니카노 노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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